美국방장관, 남중국해서 항공모함 탑승… 남중국해 대립 고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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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슈턴 카터 미국 국방장관이 5일 중국과 군사적 대치 상황을 촉발했던 남중국해에서 미군 항공모함에 탑승했다. 미 국방 수장의 항모 탑승은 이례적인 게 아니지만 이번엔 중국과 힘 대결을 벌이는 남중국해라는 점에서 중국을 향해 미국의 힘을 보여주는 사실상의 무력 경고라는 해석이 나온다. 중국은 이에 반발하고 있어 남중국해 제해권을 둘러싼 미·중 대립이 고조되고 있다. 미 해군 이지스 구축함 라센함이 지난달 27일 남중국해 인공섬 12해리(22.2㎞) 이내에 진입한 뒤 ‘항행 자유’를 외치는 미국과 ‘영토 주권’을 고수하는 중국은 갈등을 지속하고 있다.

동남아국가연합(아세안) 확대 국방장관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말레이시아를 방문한 카터 장관은 이날 말레이시아 사바 기지에서 히샤무딘 후세인 말레이시아 국방장관과 함께 수직 이착륙 수송기 V-22 오스프리를 타고 30여분를 날아 핵 추진 항공모함 시어도어 루스벨트함을 탔다.

제프 데이비스 국방부 대변인은 워싱턴의 외신 기자클럽 브리핑에서 본지의 질문에 “카터 장관의 항모 탑승은 (회의 참석차 말레이시아를 방문한 )시간대가 맞았기 때문”이라고 답변했다. 그러나 이날 항모 탑승은 남중국해 난사(南沙)군도의 인공섬 주비자오(渚碧礁)를 놓고 벌어진 영유권 갈등에 대해 미 국방 수장이 ‘전방 지휘’를 한 성격이 강하다. 카터 장관은 항모에서 전투기 운용 태세를 점검하고 항모 기동 태세를 보고 받았다. 양욱 한국국방안보포럼 연구위원은 “미 국방장관들이 방한했을 때 최전방을 찾아 한ㆍ미 연합군의 방어 태세를 점검하며 북한에 대해 도발하지 말라고 무언의 경고를 하는 것과 유사하다”고 설명했다.

카터 장관이 탑승했던 루스벨트함은 한달 전인 10월 초까지 페르시아만에 배치돼 극단주의 무장조직 이슬람국가(IS) 격퇴전을 수행하고 있다가 정비ㆍ보급이 필요해 싱가포르로 이동했다. 이로 인해 2007년 이후 처음으로 중동 해역에서 미군 항모가 한 척도 없는 공백 사태가 벌어졌다. 그랬던 루스벨트함이 남중국해에서 기동하며 중국을 겨냥한 압박 수단이 됐다. 5000여명의 해ㆍ공군 병력이 탑승하는 루스벨트함 항모 전단은 순양함 1척과 구축함 3척으로 구성되며 65대 안팎의 전투기를 거느린다.

카터 장관이 항모에 가기 위해 탔던 V-22 오스프리는 도서 지역에서 무력 충돌이나 도발이 발생했을 때 해병대 등을 신속 투입하는 수송기여서 중국을 겨냥한 이중 삼중의 메시지라는 해석이 나온다. 카터 장관은 전날 “루스벨트함 방문은 아시아 재균형(Rebalance) 정책과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중요성에 대한 우리의 굳은 각오를 상징한다”고 강조했다.

화춘잉(華春瑩)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항행의 자유를 구실로 남중국해를 군사화하고 다른 국가의 주권과 안보 이익을 위협하는 어떤 도발 행위에 대해서도 반대한다”며 “미국은 관련 군사 행위에 대한 의도를 더욱 당당하고 투명하게 밝히기를 바란다”고 비난했다.

베이징ㆍ워싱턴=최형규ㆍ채병건 특파원 mfemc@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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