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예보·금감원 출신이 강습” 광고…개인회생 브로커 학원까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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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회생 사건 브로커’ 등 조직적으로 법조 브로커를 양성해온 컨설팅 업체가 검찰에 처음으로 적발됐다. 검찰은 이 업체 출신 브로커 10여 명의 명단을 확보해 집중 수사를 벌이는 한편 이들 브로커에게 명의를 빌려준 변호사와 법무사 등으로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서울지방변호사회 관계자는 “전국 검찰청에서 개인회생 브로커 수사를 위해 신원 확인을 요청한 변호사와 사무장만 100명이 넘는다”고 말했다.

교육 뒤 명의 빌릴 변호사도 소개
1만 건 처리, 150억 번 브로커도
검찰, 변호사·법무사로 수사 확대

 4일 변호사업계와 검찰 등에 따르면 수원지검 안산지청(지청장 장호중)은 서울 서초동에 있는 개인회생 컨설팅 회사인 H연구소 대표 이모(69)씨와 이 회사에서 교육을 받은 사무장 출신 개인회생 브로커 박모(50)씨를 지난 2~3일 구속했다. 이씨는 변호사·법무사들의 명의를 빌린 뒤 법원에 신청하는 1000여 건의 개인회생 사건을 처리해 6억여원의 부당 수익을 올린 혐의(변호사법 위반)를 받고 있다. 수사 과정에서 검찰은 이씨가 개인회생 브로커들을 양성하는 교육까지 해온 단서를 확보했다. 브로커들을 모집해 개인회생 신청 업무를 가르치고 명의를 빌릴 변호사까지 소개해줬다는 것이다. 이들 변호사와는 사전에 회사 차원의 계약까지 맺은 것으로 검찰 조사에서 드러났다.

 박씨 역시 변호사·법무사들의 명의를 빌려 개인회생 법률 사무를 처리한 뒤 수억원의 불법 수익을 올린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은 이씨 등에게 명의를 빌려준 변호사 서너 명을 입건해 경위를 조사 중이다.

 수사 관계자는 “H연구소의 실체는 이전에 구속 기소한 개인회생 브로커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확인됐다”고 말했다. 검찰은 H연구소가 2002년 설립된 만큼 이 업체에서 교육받은 브로커들이 더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H연구소는 인터넷 홈페이지도 만들어 사업 홍보를 한 것으로 나타났다. 홈페이지에는 “예금보험공사 파산 관재인과 금융감독원 간부 출신들이 컨설팅을 하고 회생 경영 컨설턴트도 양성하고 있다”고 소개돼 있다. 대표인 이씨 역시 예보 파산 관재인 출신이다. 하지만 변호사법상 변호사나 법무사 등의 자격을 갖추지 않은 사람이 개인회생 신청 업무를 대행하는 건 불법이다.

 현재 이 같은 ‘법조 브로커’ 수사는 전국 검찰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지난 8월 서울중앙지법이 개인회생 브로커와 변호사 등 30명에 대해 수사 의뢰한 사건은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 산하 수사1과가 수사 중이다. 수도권 소재의 또 다른 검찰청에서도 자체적으로 법조 브로커 비리 수사를 진행 중이다. 검찰의 수사 대상자 중에는 여러 개의 사무실을 차려 놓고 개인회생 업무 등 1만여 건을 불법으로 처리해 150억원 넘게 번 브로커도 있다고 한다.

 앞서 김현웅 법무부 장관은 지난 9월 일선 검찰청에 부정부패 척결을 지시하며 법조 브로커 등 전문직역 비리 수사를 우선순위로 꼽았다.

 개인회생은 변제 시기가 왔는데도 갚을 능력이 없는 개인 채무자 가운데 수입을 얻을 가능성이 있는 사람에 한 해 최장 5년간 일정액을 갚으면 나머지 채무를 면제해주는 제도다. 해마다 신청 건수가 늘어 2010년 4만6972건에서 지난해 11만여 건으로 크게 증가했다. 하지만 브로커들까지 활개를 치며 개인회생 신청을 악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서복현 기자 sphjtbc@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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