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엽, 연이틀 도루…팀에선 '大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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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연소 3백홈런 달성을 앞둔 이승엽(사진)의 부담감은 크다. 구름 같이 몰리는 관중도, 매스컴의 관심도 부담스럽다.

20일 2백99호 홈런을 치고도 팀이 어이없이 역전패하자 인터뷰를 사양한 것을 보면 팀 코칭 스태프나 동료들에게도 적지 않게 신경을 쓰는 것 같다. 빨리 3백홈런 고지를 밟아 홀가분해지고 싶지만 뜻대로 잘 되지 않는다. 상대 투수들의 견제도 갈수록 심해진다. 이런 숨막히는 분위기에서 잠시라도 벗어나고 싶었을까. 세상 사람들이 모두 그의 '방망이'를 지켜보는 가운데 이승엽이 연이틀 '발'을 가동시켰다.

이승엽은 20, 21일 이틀간 대구 SK전에서 하루에 한개씩, 그것도 국내 최고 포수 중 한명으로 손꼽히는 박경완(SK)를 상대로 도루를 기록했다. 벤치의 사인도 없이 스스로 판단해 따낸 도루였다.

이승엽은 21일 2-1로 앞선 7회말 2사 후 볼넷을 얻어냈다. 이승엽은 다음 타자 마해영의 타석 때 2구째 변화구 타이밍을 정확히 간파하고 2루 도루를 감행했다. 여유있게 살았을 만큼 이승엽의 스타트는 절묘했다. 바로 이어 마해영의 중전 적시타가 터졌고, 이승엽은 홈을 밟아 승리에 쐐기를 박았다. 삼성은 이 점수를 끝까지 지켜 3-1로 이겼다.

이승엽의 발은 전날인 20일에도 힘차게 움직였다. 이승엽은 3-5로 뒤진 7회말 2사 3루에서 볼넷을 얻은 뒤 갑자기 도루를 시도했다. SK 배터리와 내야진은 허를 찔린 듯 당황했고, 그 순간 3루주자 박한이가 홈을 밟아 4-5로 한점차까지 추격했다.

비록 경기는 SK의 9회초 대반격으로 삼성이 10-11로 패했으나 중반까지 1-5로 뒤지던 삼성은 이승엽의 재치있는 도루를 발판으로 8회 스코어를 10-5로 뒤집는 역전극을 연출하기도 했다.

이승엽은 이로써 21일 현재 올시즌 도루 5개를 기록, 박한이.고지행(이상 6개)에 이어 팀내 2위에 오르게 됐다. 평소 발이 늦다는 소리를 듣던 이승엽의 허를 찌르는 도루는 홈런의 장쾌한 재미와는 또 다른 야구의 아기자기한 맛을 보여줬다.

대구=김종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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