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엽기 내조' 6년간 1천통 협박 편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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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남편이 승진에서 밀린 것과 관련, 6년여 동안 회사 간부와 직장 동료 등에게 1천여통의 협박편지 등을 보내온 주부가 경찰에 붙잡혔다. 전남 영암경찰서는 남편 직장의 사장과 임원, 남편보다 먼저 승진한 사람과 그의 자녀가 다니는 학교의 교장 등 50여명에게 협박편지를 보낸 혐의(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위반)로 A씨(36)에 대해 22일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경찰 조사 결과 A씨는 남편의 직장 동료이자 고교 동창인 B씨(36)가 남편보다 입사가 3개월 늦은데도 1997년 7월 먼저 승진하자 이에 앙심을 품고 최근까지 협박편지를 보내온 것으로 드러났다.

A씨는 회사 사장 등 임원들에게 "B씨를 해고하지 않으면 회사 건물을 폭파하겠다"는 등의 편지를 보냈다. B씨의 자녀가 다니는 초등학교 교장과 유치원 원장 등에게는 "B씨의 아이들을 당장 퇴학시키지 않으면 재앙이 찾아온다"고 협박했다는 것이다. 편지는 2~3줄짜리 간단한 것이 대부분이었지만, 3~4장에 이르는 장문의 글도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A씨는 1천여통의 편지 가운데 1백여통에는 협박의 의미로 면도칼을 동봉했고, 탄저균 백색가루 공포로 세상이 떠들썩했던 2001년에는 밀가루를 함께 넣어 보내는 엽기행각까지 벌였던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은 회사 내부 사람의 소행으로 보고 A씨의 남편을 포함한 직원 80여명에 대해 조사를 벌였으나 A씨가 혼자서 범행을 해온 데다 목포까지 장소를 옮겨 편지를 부치는 등 치밀한 방법을 사용해 어려움을 겪었다.

경찰은 최근 A씨가 집 근처 문구점에서 편지지.봉투.우표.면도칼 등을 대량으로 구입했다는 첩보를 입수, A씨 집에 대한 압수수색을 벌여 백과사전에서 협박편지 등을 발견해 자백을 받아냈다.

조사 결과 A씨는 B씨의 부인과 친구 사이로, 그녀의 소개로 남편을 만나 결혼한 뒤 가족끼리 서로 오가며 친하게 지내왔던 것으로 확인됐다. A씨는 경찰에서 "B씨 때문에 남편이 승진에서 누락된 것이 너무 억울하고 분통이 터져 남편 모르게 이같은 일을 벌여왔다"고 말했다.

영암=천창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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