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하! 김두우가 본 정치 세상] 盧에 怒한 DJ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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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측이 최근 "DJ를 특검 수사 대상에서 제외해야 한다"고 했을 때 김대중(DJ) 전 대통령은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도했다고 생각한다면 착각이다. "나를 봐주겠다는 거냐"며 격노했다는 것이다.

80 고령에 병까지 깊은 데다 전직 대통령인 점을 감안해 범법 행위가 있지만 덮어주겠다는 얘기는 자존심 강한 DJ에게는 모욕이었다. DJ 측과 잦은 교감을 하는 민주당 구주류의 정균환 총무가 즉각 기자 간담회를 열어 "이는 DJ에 대한 모욕"이라고 반박한 배경이다.

경남 함안 출신으로 3년여간 청와대 제1부속실장을 지내고 지금도 DJ의 비서관으로 있는 김한정(40)씨의 얘기다.

"집권 5년간 일관되게 햇볕정책을 펴서 남북 화해의 기틀을 세우고, 그 결과 야당과 보수 세력마저 대북 포용정책을 반대하지 못하도록 역사의 물줄기를 바꾸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박지원.한광옥.이기호.이근영씨가 구속되고, 이젠 金전대통령을 조사하느니 마느니 하는 모습을 보면서 삶 전체를 부정당하는 느낌을 가지시는 것 같습니다."

이런 DJ의 심경은 6.15 남북 정상회담 3주년을 맞아 방영된 KBS와의 인터뷰에서 본격적으로 드러날 뻔했다.

金비서관은 "주변에서 만류하지 않았다면 훨씬 강경한 내용이 됐을 것"이라고 전한다. DJ의 마음이 노무현 정권으로부터 멀어지고 있다는 징표다.

DJ정권에서 청와대 대변인과 홍보처장을 지낸 박준영씨도 지난 16일 한 인터넷 신문에 기고한 글에서 盧정권을 비판했다.

그는 "DJ를 비롯한 정상회담 관련자들이 공모자로 단정되고 정상회담이 범죄 취급을 받고 있다"며 "50년 만의 남북 철도 연결 행사를 정부에선 마지못해 하는 듯 초라했다"고 지적했다.

"북한이 장관급 행사로 하자는 것을 우리측이 국장급 행사로 낮췄고, DJ가 TV에 나와 6.15의 의미를 얘기하는 날 盧대통령은 우중 골프를 치고 있었다"는 말은 DJ 측근과 민주당 의원들에게서도 심심찮게 들을 수 있다.

그래서 물어봤다. "특검 시한이 연장되고 DJ를 조사하겠다면 어떻게 하겠느냐"고. 방문 조사(12.12사태 진상조사 때 최규하 전 대통령 조사 방식)든 서면 조사(외환위기 때 김영삼 전 대통령 조사 방식)든 하겠다면, DJ로서는 "특검에 출두해 조사받겠다"며 정면돌파를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DJ가 이런 선택을 할 경우 내년 4월 총선은 어떻게 될까. 정동영.천정배.신기남 의원 등 민주당 신주류 중심의 바른정치연구모임이 DJ 인터뷰 방영일인 지난 15일 밤 갑자기 모여 '특검 시한 연장 반대.DJ 조사 반대'성명을 내놓은 것은 그 결과가 두렵기 때문이다.

지난해 12월 대선에서 95%의 지지를 보인 호남과 진보층은 대부분 DJ 지지층과 겹쳐 있다.

盧대통령이 지난 3월 특검을 수용했을 때 특검의 법논리상 DJ에 대한 조사로 이어질 것이라는 건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내용이었다. 그런 청와대 측이 최근 특검 시한 연장 반대로 급선회한 것은 심상찮은 DJ 측 분위기가 전달된 것이 직접적 원인일 것이다.

DJ와의 정면충돌이냐 잠정적 연대냐, 이제 盧대통령의 선택만 남았다.

김두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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