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詩)가 있는 아침 ] - '개펄에서 놀던 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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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안도현(1961~) '개펄에서 놀던 강' 부분

서해에 닿기 전에, 만경강과 동진강은
개펄에 이르러
진흙에다 몸을 문지르며 좀 놀았는데요

밤이 되면
물가에 알을 슬어 놓고는 어기적어기적 걸어가는 도둑게들의 발자국 소리를 다 듣고
손바닥만한 대합이 달빛을 한 입에 넙죽 받아먹는 소리를 다 듣고
갯지렁이가 허리를 오므렸다 폈다 하면서 자기 삶을 밀고 나가는 소리를 다 듣고
때로는 가까운 바다에서 새우떼가 꼬리로 일제히 세상을 탁탁 치는 소리도 다 들었다는데요

그때서야 바다로 스며들어
바다하고 한 몸이 되었다는데요



둘이 진흙에다 몸을 문지르며 좀 놀았다니요? 이거 너무 에로틱한 거 아닙니까? 하고 시인에게 묻고 싶은 마음이 어느새 꼬리를 감추고, 개펄에서 나는 온갖 소리에 함께 귀기울여 본다. '세상을 탁탁 치는 소리'에 가슴이 덜컥 하고 보니, 새우떼들의 꼿꼿한 꼬리며, 도둑게들, 대합들 다 보인다. 이런 개펄이 마구마구 죽어간단다. 빨랑 가서 놀아봐야겠다.

박덕규<시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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