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스기야마 심의관, 기자회견 자청해 "대답 못한다"만 반복

중앙일보

입력

 다음달 1일 열릴 예정인 한·중·일 정상회의 사전 준비를 위해 방한 중인 스기야마 신스케(杉山晋輔·사진) 일본 정무 담당 외무심의관(차관보급)이 29일 내외신을 상대로 기자회견을 자청해 놓고 “답할 수 없다”며 중언부언만 반복해 빈축을 샀다.

주한 일본 대사관이 외교부 출입기자단에 연락을 해온 것은 오후 1시50분쯤이었다. 오후 3시15분부터 서울 운니동 일본대사관 공보문화원에서 스기야마 심의관이 영어와 일본어로 기자회견을 한다는 내용이었다. 방한한 일본 측 정부 인사들이 기자회견을 하는 일 자체가 드문 데다, 일본 기자들을 상대로라면 몰라도 외신 기자들한테까지 적극적으로 알리는 경우는 거의 없기 때문에 기자단은 이를 이례적으로 받아들였다. 기자회견을 불과 1시간 반도 남겨놓지 않고 급하게 공지가 된 터라 중대 발표가 나오는 것 아니냐는 예상도 나왔다.

기자회견은 앞서 열린 3국 고위관리회의(SOM)가 다소 길어지며 30분 정도 늦춰졌다. 차관보급 회의인 SOM에는 외교부 김홍균 차관보, 중국 외교부 류전민(劉振民) 부부장이 각각 한·중 대표로 참석했다.

하지만 스기야마 심의관은 기자회견 모두발언에서 “한·중·일 대표가 만나 3국 정상회의의 성공적인 개최를 위해 논의했다”, “정상회의를 사흘 앞둔 상황에서 여전히 최종적인 의제 조율을 위해 논의 중”, “이번 3국 정상회의는 3년 6개월 만에 열리는 것”이란 세 가지 말만 되풀이했다.

이어진 질의응답에서도 같은 말만 반복하기는 마찬가지였다. 한 외신기자가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위안부 문제에 대해 종전 70주년 담화와 다른 새로운 발언을 할 것이냐고 질문하자 “나는 3국 정상회의를 준비하러 여기에 왔다”며 “그밖의 세부적 사항을 이야기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말했다. ‘남중국해 문제가 어떤 형태로든 다뤄지느냐’는 질문에도 “그건 내가 그렇다, 아니다라고 답할 수 없는 문제”라고 했다.

이밖에 다른 질문에도 “나는 3국 정상회의를 준비하는 SOM에 참석하기 위해 온 것일 뿐”, “답을 할 위치에 있지 않다”, “일본 정부의 대표로서 답하는 것이 적절치 않다”는 한결같은 대답만 했다. “내 생각이 있긴 하지만 다른 기회에 공유하기로 하자”고도 했다. 20분 동안 스기야마 심의관은 사실상 두 가지 종류의 같은 말만 반복하다 기자회견을 끝냈다.

새로운 내용이나 언론을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일본 정부의 입장은 전혀 없었다. 그가 말한 대로 3년 6개월만에 어렵게 열리는 3국 정상회의와 한·일 정상회담을 앞두고 일본 정부의 차관보급 고위 인사가 소집한 기자회견 치고는 알맹이가 없었다. 기자회견이 끝난 뒤 그를 만나기 위해 한 시간 가까이 기다렸던 수십명의 내외신 기자들은 “이럴 거면 대체 기자회견을 왜 한 것이냐”는 허탈한 반응을 보였다.

기자회견 내용을 전해들은 한 정부 관계자는 “일본 측이 다가오는 일련의 정상외교 행사에 적극적으로 임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한 것 같다. 많은 진통 끝에 행사가 성사된 것이라 예민한 질문에 괜한 말을 해서 문제를 일으키지 않도록 신중한 모습을 보인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유지혜 기자, 하준호(연세대 정치외교학 3년) 인턴기자 wisep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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