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터] 웹마스터 회사 얼굴을 화장하는 사람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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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2면

흔히 업계에선 웹마스터를 영화감독에 비유한다. 영화감독은 영화를, 웹마스터는 홈페이지를 만드는 점만 다를 뿐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과정과 어려움은 비슷하다고 인정하기 때문이다.

홈페이지는 기업의 얼굴이나 마찬가지다. 인터넷 이용자가 늘면서 잘 만들어진 홈페이지는 기업 이미지까지 좌우하기도 한다. 그래서 기업 내 웹마스터의 역할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훌륭한 기업 웹마스터가 되기도 쉽지 않다.

인터넷 지식뿐 아니라 회사 전반에 관한 정보와 미적 감각까지 고루 갖춰야 한다. 웹마스터로 일하고 있는 현대자동차 김효영(34)과장, 하나로드림 이승훈(30)대리, 한화그룹 구조조정본부 이유리(28)대리를 만났다.

***김효영씨
현대자동차 웹마스터
(www.hyundai-motor.com)

***이승훈씨
하나로드림 웹마스터
(www.hanafos.com)

***이유리씨
한화그룹 웹마스터
(www.hanwha.co.kr)

"웹마스터는 창작의 묘미를 백분 발휘할 수 있는 직업이죠. 제가 가진 아이디어를 쏟아부으면 그것이 홈페이지에서 금방 꿈틀대며 살아납니다."

하나로드림 이승훈 대리는 대학 시절 디자인을 전공하며 한편으론 컴퓨터를 다루는 즐거움에 빠졌다. 디자이너의 꿈을 컴퓨터를 통해 이루기를 바랐던 그는 그래서 웹마스터의 길을 택했다.

현대차 김효영 과장은 고객센터 근무 시절 상담(Q&A)역을 맡았다. 그러던 중 2000년 4월 조직이 개편되면서 회사 홈페이지를 총괄적으로 관리하는 웹마스터를 맡았다. 회사는 인터넷을 통한 상담이 느는 만큼 고객상담 전문가였던 김과장이 적임자라고 판단한 것이다.

"이 일은 하면 할수록 매력에 푹 빠지게 되더군요. 이제 딴 일을 시키면 어쩌나 하는 걱정까지 들 정도예요."

한화그룹 이유리 대리는 "웹마스터는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누군가를 반갑게 맞이하고, 좋은 인연을 맺어가는 직업"이라고 소개했다.

"회사의 얼굴을 항상 새롭게 꾸미는 것이 신납니다. 화장술에 따라 회사 이미지가 크게 달라질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면 저절로 신중해지기도 하고요."

한화그룹 이대리는 자신의 직업에 만족한다. 회사 동료들이 자신을 '회사의 얼굴을 관리하는 사람'으로 인정해 줄 땐 으쓱해지기도 한다.

김과장은 최근 인터넷이 대중화되고 중요성이 커지는 것과 비례해 웹마스터의 위상이 높아지는 것을 실감한다고 한다. 김과장은 "과거 제조업에서는 홈페이지를 관리하는 것을 그리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죠. 하지만 홈페이지를 통한 제품 홍보가 늘어나면서 웹마스터의 역할이 크게 늘어났다"고 설명했다.

하나로드림 이대리는 "아무나 할 수 없다는 웹마스터의 전문성 덕분에 더욱 위상이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홈페이지는 회사의 전 분야를 담고 있습니다. 세부 분야의 업무를 잘 파악한 뒤 콘텐츠를 고르게 배분해야 홈페이지가 살아나죠."

담당부서의 의견을 듣고 홈페이지의 전체적인 청사진을 짜는 것은 김과장의 몫이다. 김과장은" 특정 콘텐츠를 너무 강조하면 홈페이지의 균형이 흐트러진다"며 "부분과 전체를 조화시키는 것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한화그룹 이대리는 빠르게 변하는 인터넷 기술발전 속도에 맞추어 홈페이지를 발전시키는 과제가 어렵다고 토로한다. 그는 "얼마나 많은 사람이 접속하느냐보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우리 홈페이지에 호감을 갖고 원하는 것을 얻느냐에 대해 항상 고민하고 있다"라고 털어놨다.

하나로드림 이대리 역시 새로운 인터넷 관련 기술을 습득하고 네티즌들의 입맛을 맞추는 것이 어렵다고 했다.

하나로드림 이대리는 지난해 회사의 광고모델 때문에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다. 광고모델로 나오던 모가수가 병역파문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회사는 부랴부랴 광고모델을 취소하고 콘텐츠의 많은 비중을 차지했던 그의 모습을 당장 홈페이지에서 없애야 했다.

이대리는 "며칠 동안 홈페이지를 바꾸느라 크게 부산을 떨었죠. 특정 콘텐츠의 비중이 클 경우 이런 일도 있을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을 많이 했죠"라고 말했다.

한화그룹 이대리도 회사 광고모델 때문에 한동안 고생했다. 이 광고모델도 지난해 말 이혼파동을 겪으며 네티즌들이 불만을 표출했기 때문이다.

김과장은 "가끔씩 네티즌들의 성화에 게시판이 어지럽게 되는 경우가 있죠. 이를 어떻게 처리하느냐가 웹마스터의 숙제라고 생각합니다"라고 풀이했다.

하나로드림은 지난해 하나넷과 드림엑스가 통합한 회사다. 두 회사의 홈페이지를 통합하는 작업에 참여한 이대리는 몇달간 밤샘 작업을 계속했다.

그는 "월드컵 열풍이 한국을 몰아치던 여름날에도 홈페이지 통합 작업에 몰두했죠. 온 국민이 하나가 돼 목청이 터지도록 한국의 승리를 염원했던 것처럼 우리 동료들이 최고의 홈페이지를 만들기 위해 똘똘 뭉쳤던 것이 기억에 납니다"라고 당시를 떠올렸다.

한화그룹 홈페이지에는 회사에 대한 질문이나 제안.칭찬 등을 올리는 '고객의 소리'라는 코너가 있다. 질문이 올라오면 즉시 이대리의 휴대전화로 통보된다. 특히 신입사원 공채기간엔 밤새도록 메시지가 울려 이대리는 잠을 설치곤 한다. 그러나 이대리는 "새벽에 글을 올리는 지원자들의 안타까운 마음을 생각하면 잠시나마 귀찮아했던 마음도 그냥 수그러든다"고 말했다.

김과장은 홈페이지를 잘 만들었다는 격려의 글이 독자 의견란에 오를 때마다 일의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홈페이지를 통해 제품 홍보를 강화해야할지, 회사 이미지 구축을 중시해야 할지 고민입니다. 현재 대부분의 홈페이지가 좋게 얘기하면 퓨전이지만 나쁘게 말하면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상태거든요."

현대차 김과장은 기업 홈페이지의 한계를 이같이 지적하면서 "한쪽으로 확실한 방향을 잡아야 전달하는 메시지가 강해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한화그룹 이대리는 인터넷 문화가 성숙하지 않은 상황에서 웹마스터의 일이 간단치 않다고 말한다. 이대리는 "상업적 이익에만 치중해 네티즌을 숫자나 구매자로만 착각하고 배려하지 않는다면 좋은 웹마스터가 될 수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하나로드림 이대리는 충분한 경험을 쌓아야만 인터넷 시대의 올바른 웹마스터로 자리잡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대리는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하나씩 채워간다는 마음으로 홈페이지를 관리할 때 어느새 훌륭한 웹마스터가 돼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답했다.

그는 또 "웹마스터가 지금은 각광받는 직업일지 모르지만 몇 년 후에는 다른 직업이 더 인기가 높아질지 모르는 일이죠. 만약 일에 대한 만족감 없이 단순히 현재 주가가 높은 직업이기 때문에 선택했다면 언젠간 후회하게 될 것"이라고 충고했다.

글=강병철 기자, 사진=임현동 기자

<사진설명>
웹마스터로 맹활약 중인 하나로드림 이승훈 대리, 한화그룹 이유리 대리, 현대자동차 김효영 과장(왼쪽부터)이 인터넷 프로그램 언어가 투사된 스크린 앞에 나란히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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