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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신성식의 요람에서 무덤까지

말기환자는 기다리지 않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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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신성식 기자 중앙일보 복지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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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식
논설위원 겸 복지전문기자

병이 깊어져 말기가 되면 본인이든 가족이든 참 어려운 결정을 해야 한다. 갑자기 숨지지 않으면 누구나 연명의료에 부닥친다. 몇 년 전 모친이 갑자기 쓰러졌다. 응급실에 도착했을 때 의식불명 상태였다. (인턴 또는 레지던트로 짐작되는) 젊은 의사는 “회생이 힘듭니다. 작은 병원으로 옮기시죠.” 그는 뇌 영상 사진을 보여주며 “손 쓸 방도가 없다”고 말했다. 당시 얼마나 냉정하게 들렸는지….

 뇌혈관이 부풀러 올랐다가 터지는 뇌동맥류였다. 중환자실 입원이 닷새를 넘기면서 고민이 시작됐다. ‘계속 인공호흡기를 달아놓아야 하나. 나 자신이 연명의료 중단을 강조하는 기사를 써왔지 않은가.’ 그렇지만 실제 상황 앞에서 결정이 쉽지 않았다. 열흘 만에 어머니가 유명을 달리하면서 그 고민도 끝났다. 당시 냉정하긴 했지만 그 의사의 판단과 권고가 정확했다.

 자식이 이렇게 망설일 정도니 당사자들은 어떠할까. 서울대병원 윤영호·김범석 교수가 이런 의문에 답을 줬다. 연구팀은 말기 암환자 141명에게 연명의료 의사를 물었다. 71명은 연명의료를 하겠다고, 70명은 거부하겠다고 답했다. 두 달 후 다시 확인했다. 연명의료를 하겠다던 71명 중 23명은 거부로, 연명의료를 거부한 70명 중 24명은 수용으로 돌아섰다. 47명(33.3%)이 결정을 바꾼 것이다. 결정적 순간에 가족과 주변 환경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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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인의 36.7%는 연명의료를 반대하고 52.2%는 매우 반대한다(2014년 노인실태조사). 2009년 세브란스 김 할머니 존엄사 판결 이후 연명의료 기피 분위기가 확산됐다. 평소 생각대로 연명의료를 하지 않으려면 호스피스 같은 서비스가 뒷받침돼야 한다. 하지만 지금은 시설이 부족해 말기암환자의 13%만이 이 서비스를 받는다. 이 서비스가 필요한 때가 돼서 문의하면 “2~4주 대기”라는 답이 돌아오기 일쑤다. 그동안 숨지는 경우가 태반이다. 말기환자는 기다리지 않는다.

 마침 올 7월부터 호스피스 서비스에 건강보험이 적용돼 부담이 크게 줄었다. 이것만으로 부족하다. 최근 호스피스·완화의료국민본부가 2020년까지 호스피스 병상을 2500개(현재 1033개)로 늘리자고 제안했다. 호스피스 관련 법률(8개가 국회 계류 중)이 하루빨리 국회를 통과해야 한다. 법률이 만들어지면 민간병원, 공공병원 할 것 없이 병상과 전문인력을 늘리도록 정부가 나서야 한다. 이런 게 진짜 공공의료다. 그래야 세계 18위인 죽음의 질을 10위권으로 끌어올릴 수 있다. 

신성식 논설위원 겸 복지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