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휘장 '뇌물 4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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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검찰의 월드컵 휘장사업 관련 수사가 계속되면서 당시 업계의 뇌물 뿌리기 행태도 속속 드러나고 있다.

결국 '실속없는 사업'으로 전락했지만 당시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인식됐던 이 사업을 놓고 업자들이 얼마나 뛰었는지를 보여준다.

"2000년 여름 호남지역 한 시청의 계장인 李모씨가 아파트로 이사갔을 때 한 납품업체 측이 인테리어를 새로 해줬다."

한때 휘장 사업권자였던 CPP코리아 전 한국지사장 金모씨가 검찰에서 진술한 것으로 알려진 말이다.

20일 검찰과 업체 관계자들에 따르면 이 납품업체가 4천만원을 들여 인테리어를 해준 것은 당시 해당 시에서 발주한 수억원대 규모의 깃발.배너 납품권을 따내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金전지사장은 특히 "이 납품업체 측은 '시장에게 전해달라'며 李씨에게 1억여원을 건넨 것으로 안다"고 진술했다. 검찰이 은밀히 수사 중인 내용이다.

같은 해 납품업체 K사 대표 黃모씨는 모 신문사 지방주재기자 C씨에게 한복 옷감을 선물로 줬다. 자그마치 50명의 한복을 지을 수 있는 분량이었다고 한다.

값으로는 2천만원어치. 휘장 상품 주문을 검토하던 한 광역시 부시장을 비롯해 고위 간부들을 만나게 해준 사례 명목으로였다.

마침 시장은 해외 출장 중이어서 만나지 못했다고 한다.

黃씨는 "돈을 달라고 했으면 돈을 주었을 텐데 그때 옷감이 남아 그걸 대신 줬다"고 말했다.

黃씨는 또 다른 광역시장을 만나게 해주는 등 사업에 도움을 준 C기자의 직장 동료인 朴모 전 기자에게도 '보은(報恩)'을 한 것으로 밝혀졌다. 朴씨의 동생을 자신의 회사 직원으로 쓴 것.

黃씨의 사촌형인 대학교수 출신 건축사 金모씨의 경우 "휘장 사업 관련 외국계 업체 고위층에게 로비를 해야 한다면서 黃씨에게서 10만달러(1억2천만원 상당)를 받아갔다"는 관련자의 진술이 검찰에 확보돼 있다.

이에 대해 金전교수는 "黃씨 사업을 돕는 과정에서 해외 출장을 자주 가야 했고, 그때 출장비 등으로 썼을 뿐"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휘장 사업권 관련 업체인 G사 대표 沈모(구속)씨가 양도성예금증서(CD) 수십억원 어치를 친분있는 고위 정치인 자녀에게 제공했다는 소문도 검찰 주변에선 나돌고 있다.

G사 측은 추석 등 명절 선물로 정.관계 유력 인사 40여명에게 장뇌삼.옥바둑.갈비 세트 등을 주며 철저히 인맥관리를 해왔음이 검찰 조사에서 드러나 있다.

한 검찰 관계자는 "'월드컵 휘장사업은 뇌물사업'이었다는 항간의 소문이 사실로 드러나고 있다"고 말했다.

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지검 특수1부는 이날 금품 로비 연루 혐의로 긴급체포했던 朴전기자를 일단 귀가시키고 추후 재소환하기로 했다.

조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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