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聯 마하티르총리 "美, 이슬람 무차별 공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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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적 가치'를 주장해온 마하티르 모하마드(77.사진) 말레이시아 총리가 은퇴를 4개월 앞두고 '인종적 가치'를 내세워 서방국가들에 독설을 퍼부었다.

"미국.호주.뉴질랜드를 포함한 앵글로색슨 국가들이 9.11테러 응징을 구실로 이슬람국가들을 공격함으로써 과거 그들의 '원초적 폭력성'으로 되돌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20일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IHT)과 파이낸셜 타임스(FT)는 마하티르가 집권 말레이민족연합기구(UMNO)의 연례총회 개막연설에서 이같이 말했다고 보도했다.

이 자리에서 마하티르는 "그들의 대(對)테러전쟁은 이슬람국가들과 교도들을 죄가 있건 없건 간에 공격하는 것"이라며 "대량살상무기를 사용해 민간인을 죽이고 마을을 파괴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마하티르는 또 "내부의 적이 외부의 적보다 훨씬 더 위험하다"며 말레이시아인의 단결을 촉구했다.

마하티르의 대서방 공격은 그동안 여러번 있었다. 하지만 23년 정치 여정을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터져나왔다는 점에서 외지들은 사전에 계산된 행동일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내년 총선을 코앞에 두고 흔들리는 집권세력의 입지를 강화하기 위해 '민족'이라는 화두로 내부 균열을 봉합하려 했다는 것이다.

마하티르는 우선 집권세력 내에서 자신의 후계구도와 관련해 나타나고 있는 분열 조짐을 우려하고 있다. 현재 마하티르는 부총리인 압둘라 아마드 바다위를 차기 총리로 내정해 놓았다. 이에 공석이 되는 부총리 자리를 놓고 다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9.11테러 이후 미국 등에서 고양된 반(反)이슬람 분위기에 격앙돼 있는 대표야당 이슬람 말레이당(PAS)의 불만을 다독이는 것도 마하티르의 숙제다. 이들은 말레이시아를 이슬람 원리주의국가로 만드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마지막으로 국민의 62%를 차지하는 말레이계 유권자들이 야당에 호감을 보이기 시작해 마하티르는 불안해하고 있다.

효과는 당장 나타났다. 마하티르의 말이 전해지자 대부분의 보수적인 말레이시아인들을 비롯해 마하티르가 의장을 맡고 있는 비동맹운동(NAM)으로부터 '자주적 발언'이라는 호의적 반응이 전달됐다.

박경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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