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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박함이 안 느껴지는 저출산 대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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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정종훈 기자 중앙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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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종훈
사회부문 기자

“전셋집 찾기도 어려운데 대출금만 늘리면 뭐하나.” “정부가 맞선을 안 시켜줘 결혼 못하는 게 아니다. 연애는 알아서 할테니 애 낳고 살고 싶은 나라로 만들라.”

 정부의 3차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2016~2020) 시안이 18일 공개되자 온라인 여론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신혼부부 전세대출 한도 확대, 임신·출산의 의료비 부담 절감 등이 제시됐지만 젊은층은 고개를 저었다. 각 지자체가 지역 공공기관·기업체 참여를 유도해 맞선을 주선한다는 아이디어까지 내놨지만 돌아온 건 냉담한 반응뿐이었다. 취업 실패 또는 저임금 때문에 연애·결혼·출산은 물론 인간관계와 희망까지 포기했다는 ‘N포세대’(포기해야 할 것이 수없이 많은 젊은층이라는 의미)라는 용어까지 등장한 현실을 너무 모른다는 탄식이 쏟아졌다.

 200쪽 분량의 3차 계획 자료집을 여러 차례 읽어봤지만 ‘이 정도면 젊은층이 아이를 낳고 싶겠다’는 생각이 드는 부분은 찾기 어려웠다. 본질을 꿰뚫은 근원적인 해결책으로 보이는 것도 없었다. 대부분의 젊은층은 일시적 혜택을 믿고 아이를 낳겠다는 ‘모험’을 하지 않는다. 전문가들도 정부가 백화점식 대책을 나열하는 기존 행태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도 할 말은 있다. 복지부 관계자는 “출산율 올리는 방법을 알아내는 사람은 노벨상을 받을 것”이라고 토로했다. 80조원을 넘게 쏟아부었지만 출산율 지표는 별반 나아진 게 없는 상황이다. 10년간 애써도 달라지는 게 없으니 답답해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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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김회룡 기자]

 문제는 정부의 대책에 절박함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꿈을 접은 채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는 젊은이들이 바라는 것은 2000만원의 추가 전세 대출금 같은 것이 아니다. 열심히 일하면 내 집을 가질 수 있을 것이라는 상식적 기대, 지옥 같은 입시 경쟁에 내 자식을 내몰지 않아도 되는 교육체계, 고용 불안에 떨지 않아도 되는 근로 환경이 이들이 바라는 진정한 저출산 대책이다. 당장 실현될 수는 없다 해도 10년, 20년 뒤에는 반드시 달라질 것이라는 믿음을 줘야 한다. 그래야 결혼을 하고, 애도 낳는다.

 내년에 시행될 3차 계획은 사실상 국무회의의 의결만 남겨놓고 있다. 이 계획에는 ‘국가발전전략’ ‘사회 체질 개선’ 등의 단어가 자주 등장한다. 그러나 정작 전략은 보이지 않는다. 체질 개선이 아니라 진통제나 항생제 처방처럼 보이는 것도 많다. 요즘 젊은층 사이에서 인기를 얻고 있는 록그룹 ‘중식이 밴드’는 ‘아기를 낳고 싶다니, 그 무슨 말이 그러니, 너 요즘 추세 모르니?’라고 젊은이들의 심정을 노래한다. 저출산 대책을 강구하는 모든 이에게 일청(一聽)을 권한다.

정종훈 사회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