닷새 남은 특검 연장 딜레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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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盧武鉉)대통령의 고민이 깊다. 특검팀이 대북 송금 수사 기한의 연장을 요청할 경우 이를 수용할지를 놓고서다. 현재까지 盧대통령의 생각은 반반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지난번 특검을 수용할 때와 비교하면 사뭇 대조적이다. 당시 청와대는 외부적으로는 '고민 중'이라고 했지만, 내부적으로는 '수용' 쪽으로 가닥을 잡아놓고 있었다.

고민은 크게 두 가지다. 우선 특검팀이 연장을 요청해 오면 특별한 하자가 없는 한 대통령이 수용하도록 돼 있는 '법률적 당위성'을 어떻게 해결하느냐다. 이 대목은 여론과도 직결된다.

특히 지난번 특검 수용으로 盧대통령에 대한 인식의 변화가 시작된 영남권 정서를 고려할 때 더욱 그렇다. 청와대 관계자는 "부산.경남지역의 경우 특검 수용 후 盧대통령에 대한 지지가 급격히 올라간 게 사실"이라며 "만약 특검 연장을 명분 없이 거부할 경우 그 반대 효과도 감수해야 할 판"이라고 말했다.

"연장 요청서를 받아봐야 한다. 연장 사유의 합당성을 따져 결정할 문제"라는 문재인(文在寅)민정수석의 발언도 이런 '법률적 고려'에 무게를 둔 것이란 해석이다.

또 다른 고민은 '정치적 고려'다. 수사 기간 연장이 전직 대통령에 대한 조사로 이어질 경우 밀어닥칠 파장이다. 특검 수용 당시 흔들리기 시작했던 호남지역 정서가 걷잡을 수 없는 상황으로 빠져들 수 있다는 데 대한 위기감이다.

이는 지지부진한 민주당 내 신당 논의에도 찬물을 끼얹을 가능성이 크다. 여권의 한 관계자는 "이번에 盧대통령이 특검을 연장해 줄 경우 당내에서 신주류가 설 땅이 없어진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청와대는 두마리 토끼를 잡을 방안을 검토 중이다. 특검 연장의 공을 여야로 되돌리는 것이다. '여야 간 합의가 될 경우 수용하겠다'는 카드다. 사실상 연장 불가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여기에는 당초 정치권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가 청와대로 잘못 넘어왔다는 판단이 깔려 있다. 청와대의 한 핵심 측근은 "분명히 대통령이 특검을 수용할 때 '여야가 재협의하고, 수사 범위에서 송금 부분을 뺀다'는 조건을 달았다"며 "그런 약속이 지켜지지 않은 상황에서 또다시 청와대가 모든 부담을 질 수는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박지원 전 대통령 비서실장의 1백50억원 수수설' 파문이 변수로 남는다. 대북 송금 수사가 정치자금 문제로 번지는 상황에서 과연 청와대의 이런 카드가 먹히겠느냐는 것이다.

이 때문에 청와대는 전직 대통령에 대한 조사를 제외하는 조건으로 특검 연장을 수용하는 방안에 대해서도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이수호 기자
사진=신동연 기자<sdy1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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