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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교과서 국정화 논란에 관심 없는 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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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박혜민 기자 중앙일보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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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혜민
메트로G팀장

솔직히 역사 교과서 국정화 논란에 별 관심이 없다. 한국 사회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이 주제에 관심 없다고 하면 생각 없는 사람으로 비칠까 걱정도 되지만 어쩌랴. 학부모 입장에선 어떤 교과서를 쓰든 다를 게 없다. 아이들은 학교에서 정해준 교과서로 공부하게 될 테니 교과서가 10종이든 1종이든 배우는 건 어차피 1종이다. 게다가 우리에겐 EBS 교재가 있다. 수능 문제 70%가 EBS 교재와 연계돼 출제된다.

 더 중요한 건 학교 역사 수업이라는 게 거기서 거기라는 거다. 깊이 있는 토론이나 학생들의 생각을 물어보는 수업은 거의 없다. 맥락 없이 연도를 외우는 건 예나 지금이나 어려운 일이다.

 학창 시절에 세계사 과목을 좋아했다. 하지만 한국사는 아니었다. 이유는 단 하나. 선생님이 달랐다. 세계사 선생님은 영국의 명예혁명이나 프랑스 시민혁명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재미나게 설명해 주셨다. 흐름과 의미를 알면 연도 외우는 거 별로 어렵지 않다. 국사는 아니었다. 왜 영조와 정조가 위대한 왕인지 이해를 못했다. 그저 수많은 왕이 만든 관청이나 제도 등을 헷갈리지 않게 외우느라 진땀을 뺐다. 시험이 끝나면 아무것도 기억에 남지 않았다.

 지난주는 중·고등학교 중간고사 기간이었다. 두 아이가 시험 공부하는 걸 지켜보면서 30년 전 내 학창 시절과 별로 다르지 않구나 싶었다. 한국사는 여전히 외울 것만 많은 재미없는 과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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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박용석 기자]

 지난달 한 유명 외국어고의 수업 방식이 본지에 소개됐다. 그 학교는 국내 대학에 진학하는 학생과 해외 대학 진학을 준비하는 학생에게 각각 다른 내용의 수업을 하고 있었다. 국제반 역사 수업은 사실을 나열하는 게 아니라 하나의 역사적 사건을 통해 어떤 지도자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 국제 관계가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등을 학생들 스스로 분석해 발표하고 토론하는 방식이었다.

 그 기사를 보면서 내 아이도 그런 수업을 받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소위 명문고에 진학하지 않은 내 아이가 그런 수준 높은 수업은 받지 못할 거다. 이제 본격적인 입시 경쟁에 돌입하는 아이는 내가 그랬던 것처럼 그저 외우고 또 외울 거다.

 아이들에게 어떤 역사를 외우도록 할까를 놓고 싸우는 대신, 아이들 스스로 역사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를 고민하도록 만들어 주는 게 더 중요하지 않을까.

 하지만 치열한 정쟁으로 격화하는 최근의 국정화 논란을 보면 별로 그럴 가능성이 안 보인다. 그래서 더 관심이 없다.

박혜민 메트로G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