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거제시의 속 보인 기업 단속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2면

지난 17일 오후2시 경남 거제시 사등면 성포리 녹봉조선. 거제시청 건축계 공무원 3명이 미등기 건축물 실태를 1시간 동안 조사했다. 이들은 천막을 쳐놓은 작업장과 컨테이너 박스까지 미등기 건물로 파악한 뒤 돌아갔다. 10분 뒤 거제시청 환경관리과 공무원 등 3명도 "페인트가 날린다는 신고를 받고 왔다"며 작업장을 둘러봤다.

거제시청 공무원들의 이 조선소에 대한 단속은 지난 12일부터 이뤄졌다. 조선소 앞에 건설되는 가조 연륙교가 설계잘못으로 배 진수에 지장을 받는다는 언론보도가 나간 직후였다. 거제시청 공무원들은 거의 매일 단속을 벌였으며 이틀 동안은 하루에 2개 단속반이 다녀가기도 했다.

이에 대해 녹봉조선 김웅준 사장은 "보도 직후 집중단속을 벌이는 것은 시가 설계잘못을 은폐하기 위한 보복단속으로 볼 수 밖에 없다"며 "기업체의 어려움을 해결해 주지는 못할 망정 생산에 지장을 주면 어떻하느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거제시 관계자는 "미리 예정돼 있는 검찰.경찰과 합동단속을 실시했을 뿐이며 보복단속은 아니다"라고 해명하고 있지만 설득력이 없어 보인다. 현 경영진이 회사를 인수한 1998년 이후 단 한차례의 단속도 하지 않았던 거제시가 갑자기 집중 단속을 벌이는 것은 기업체를 굴복시키려 한다는 오해를 낳기에 충분하다.

설사 예정된 단속이라 하더라도 오해를 피하기 위해 단속 시기를 늦추는 것이 보다 현명했다는 지적도 있다. 거제시의 이같은 행태는 기업의 어려움을 적극 해결해주고 있는 경남도의 방침과도 배치되는 것이다. 거제시 공무원들은 국제통화기금(IMF)사태 때 내려진 공무원들의 기업체 방문 금지 조치를 되새겨 볼만하다.

김상진 전국팀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