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조흥은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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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조흥은행은 다른 은행과 달리 '최초' '1호'의 기록이 유달리 많다.

1897년 한성은행으로 출범한 조흥은행은 한국기네스협회로부터 국내 최고(最古)은행으로 인정받았다. 또 국내 최초의 법인기업이기도 하다. '조흥'이란 이름은 일제 시절 한성은행을 비롯한 9개 은행이 단계적으로 통합하면서 1943년 10월 1일 정해진 것이다.

18년엔 국내 은행 최초로 도쿄(東京)에 지점을 냈다. 56년 증권거래소에 상장했을 때도 상장주식 제1호로 기록됐다. 종목 코드는 지금도 상장사 중 가장 빠른 A00010이다.

최근에도 '최초'기록은 이어진다. 90년 7월엔 명동지점에 국내 최초의 무인 자동화 코너를 설치했다. 95년 9월에는 은행계정과 신탁계정이 처음 10조원을 돌파했다.

또 99년 5월 영문 이니셜인 CHB를 은행로고로 채택했고 같은 해 7월엔 인터넷뱅킹 서비스를 시작했다. 모두 국내 은행으론 첫 테이프를 끊은 것이다.

노조도 마찬가지다. 60년 6월 1일 금융권 최초로 노동조합이 설립된 것이 바로 조흥은행이다. 당시 50명의 발기인은 4월 혁명정신의 계승과 금융민주화, 금융노동자의 권익보호를 천명했다.

80년 4월 17일엔 금융노조 최초로 37시간의 시한부 농성을 벌이기도 했다. 99년 충북.강원은행 및 현대종합금융과의 합병 당시엔 노조들이 먼저 통합하는 전례없는 기록을 남겼다.

이런 기록들은 알게 모르게 '조흥맨'의 자부심으로 쌓이기에 충분할 것이다.

이는 새로 만든 은행 로고에도 담겨 있다. 로고의 중심색인 청록색은 논리적이고 이상적인 이미지를 지닌다고 한다. 또 영문 이니셜 CHB에 사용된 주홍색은 고객에 대한 충성심을 의미한다. 이를 반영하듯 조흥맨의 행동규범에는 '언제나 고객에게 물어 보자'는 것이 가장 먼저 나온다.

그러나 부실은 은행의 역사나 기록을 따지지 않는다. 영악해진 고객들도 그렇다. 이미 예금이 빠지고 있다. 또 파업 앞에서는 자랑스러운 기록들도 빛을 잃을 수 있다. 국내 1호 은행이 '무기한 파업 1호'라는 기록을 남기지 않기 바라는 것은 조흥맨이나 그 가족들만이 아닐 게다.

남윤호 정책기획부 차장대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