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기의 反 금병매] (77)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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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5면

무대의 장례는 현청에서 검시관이 나와 시신을 검사한 후에 입관 허락이 떨어져야 비로소 가능한 것이었다. 그 당시 가정에서나 사회에서 의심스러운 죽음이 많이 있었기 때문에 검시 절차를 까다롭게 밟도록 규정해 놓은 것이었다.

그 무렵 청하현 현청 검시관들을 진두지휘하는 우두머리는 하구(何九)라는 사람이었다. 그는 아주 꼼꼼한 사람으로 정평이 나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시신을 제대로 검시하지 않았다가는 나중에 무슨 일을 당할지 알 수 없었다.

타살인데도 자살이나 자연사로 처리하였다가 후에 살인범이 잡히는 경우 여간 곤란해지는 것이 아니었다. 자살이나 자연사인데도 타살로 처리했다가는 살인범을 잡느라 쓸데없이 인력과 돈이 낭비되고 마는 것이었다.

그러나 죽은 자는 말이 없는 법. 당신 어떻게 해서 죽게 되었소, 하고 물어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하구는 그동안 시신 감별법에 관한 책들을 읽고 실제 경험들에 비춰 보며 연구에 연구를 거듭해와 그 방면에서는 일인자 소리를 듣게 되었다.

그런 하구가 무대의 시신을 검시한다면 금련과 서문경으로서는 빠져나갈 구멍이 없었다. 검시관이 눈먼 장님이라 하더라도 무대가 독살되었음을 알아채고도 남을 판이었다.

하구가 무대의 시신을 검시하러 오기 전에 어찌 해서든지 하구를 구워삶아 놓아야만 하였다. 그 일은 물론 서문경이 맡게 되었다.

서문경은 하구의 일행이 현청을 나와 무대 집이 있는 자석가로 향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는 자기가 먼저 자석가 어귀로 가서 하구를 기다렸다. 정오가 조금 못 되어 하구 일행이 자석가로 들어섰다. 서문경이 우연히 만난 것처럼 하여 하구에게 인사를 하였다.

"하구형, 어디를 그리 급히 가시는 거요?"

"시장에서 호떡을 팔던 무대랑이 갑자기 죽었다고 해서 검시를 하러 가는 길이오."

"아, 그 호떡장수 말이오? 나도 문상을 다녀왔소. 그 사람 호떡을 팔러 다니다가 도랑에 미끄러져 가슴을 크게 다쳐 죽었다고 하던데 검시까지 할 필요가 있겠소?"

"어떤 시신이든지 일단 검시를 해야 입관을 할 수 있는 거 아니오? 나도 귀찮지만 직업이 직업인 만큼 어쩔 수가 없소."

"날씨도 이렇게 더운데 고생이 많겠소. 우선 주막에 가서 시원한 술이나 한잔 걸치고 가구려. 나도 출출하던 참인데."

"그, 그럴까요. 그럼 검시관들은 먼저 무대네로 가 있도록 하고 우리끼리만 한잔 합시다."

"검시관들이 무대 집으로 가면 곧바로 검시가 시작되는 건가요?"

서문경이 속으로는 다급했으나 짐짓 사소한 질문을 하는 듯이 물어보았다.

"그건 아닙니다. 내가 가기 전에는 아무도 검시를 할 수 없습니다. 다만 검시관들이 먼저 가서 다른 사람들이 시신을 함부로 건드리지 않도록 감시를 하고 있는 거죠."

서문경은 몰래 안도의 한숨을 쉬며 자석가에서 고급 술집으로 이름난 주점으로 하구를 데리고 갔다. 하구는 그 술집이 가까워지자 난색을 표하였다.

"업무 중에 이런 고급 술집에 들어가면 곤란한데요. 어디 작은 주막에라도 가서 간단히 한잔 하는 것이 어떻겠소?"

"허허허, 내가 볼 때는 이 술집도 작은 주막에 불과하오. 너무 부담 갖지 말고 잠시 쉬었다 가시오. 예쁜 가희들도 있으니 잠깐 눈요기도 하시고. 시체만 자꾸 보고 다니면 정신 건강상 좋지 않소."

"하긴 맨정신으로는 하기 힘든 일이오. 그래도 정확하게 검시하려면 너무 술 기운을 빌려서는 안되겠지요."

"내 말이 그 말이오. 딱 한잔만 하고 가시라니까."

두 사람은 주점으로 들어가 은밀한 방으로 안내받았다. 한눈에 보아도 미색인 젊은 주모가 두 사람 사이에 앉아 아양을 떨어가며 술 시중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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