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장례식장서 배다른 동생을 만난다면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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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마을 다이어리’에서 주연을 맡은 나가사와 마사미. [사진 라희찬(STUDIO 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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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15년 전 자신들을 버리고 딴살림을 차린 아버지의 장례식장에서 배다른 여동생의 존재를 알게 된 세 자매. 이들은 기댈 곳 없는 딱한 신세의 이복동생을 데려와 어색한 동거를 시작한다.

일본 영화 ‘바닷마을 다이어리’ … 고레에다 감독과 배우 나가사와

 영화 ‘바닷마을 다이어리’(12월 개봉 예정,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는 일본의 해변마을 카마쿠라에서 부모 도움 없이 꿋꿋이 자라난 사치(아야세 하루카), 요시노(나가사와 마사미), 치카(카호) 세 자매와 이복동생인 열세 살 소녀 스즈(히로세 스즈)가 성장해가는 과정을 사려깊게 지켜본다. 그래서 일본판 ‘작은 아씨들’, 또는 감독의 전작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2013, 칸영화제 심사위원상 수상)의 제목을 빌어 ‘그렇게 가족이 된다’로도 불린다. 올해 칸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한 이 영화는 지난 10일 폐막한 부산국제영화제에서도 뜨거운 관심을 모았다.

 부산의 해안선이 내려다보이는 호텔 로비에서 고레에다 히로카즈(53) 감독과 둘째딸 요시노를 연기한 배우 나가사와 마사미(28)를 만났다. 요시다 아키미의 동명 만화를 원작으로 이 영화를 만든 고레에다 감독은 “시간이 복원되는 아름다운 이야기여서 꼭 영화로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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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한 장면. 네 자매가 마당에서 불꽃놀이를 하며 단란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사진 부산국제영화제]

 영화에서 아버지를 한심한 사람으로 기억하던 장녀 사치는 아버지에 대한 이복동생 스즈의 기억을 통해 아버지와의 시간을 되돌린다. 그리고 아버지를 예쁜 여동생 스즈를 만들어준, 고맙고도 자상한 사람으로 재평가한다. 자신의 존재가 많은 이들에게 상처를 주었다는 죄의식 속에 살던 스즈도 언니들과의 동거를 통해 순수한 마음을 되찾고, 살아갈 용기를 얻는다.

 영화마다 소중한 사람을 잃은 이들이 상실감을 극복해가는 과정에 집중해온 고레에다 감독은 이번 작품에서 상실과 죽음을 새로운 관계의 시작으로 재해석한다. 세 자매는 아버지의 죽음을 계기로 스즈와 새로운 가족이 되고, 할머니의 제삿날 오래전 집을 떠난 엄마를 만나 마음의 앙금을 씻어낸다. 고레에다 감독은 “삶에서 행복과 불행은 쉽게 구별지을 수 없다는 메시지를 담고 싶었다”고 말했다.

 중화권 영화로도 활동반경을 넓히고 있는 15년차 톱배우 나가사와 마사미는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2011) 이후 두 번째로 고레에다 감독의 작품에 출연했다. 그가 연기한 둘째딸 요시노는 자유분방하고 현재를 즐긴다. 의연한 장녀 사치와 대비되는 인물로, 극에 생(生)의 에너지를 불어넣는다. 그는 “실제 성격과 전혀 다른 요시노의 에너지 넘치는 모습에 힘을 얻어 현장에서 분위기 메이커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영화 곳곳에 깔려있는 죽음의 분위기를 상쇄해주는 또 하나의 설정은 네 자매의 식사 장면이다. 나가사와는 “일본 최고의 푸드 스타일리스트 이이지마 나미가 음식을 맛있게 만들어줘 다들 현장에서 배부르다는 말만 했다”고 했다. 두 사람은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으로 네 자매가 함께 해변을 걸어가는 마지막 장면을 꼽았다.

 “네 자매가 진정한 가족이 된 그 순간이 계속되길 바라는 마음이 간절했어요. 2년 정도 더 찍고 싶어질 만큼 행복한 현장이었습니다.”(나가사와)

 “마지막 장면은 필름이 끊기지 않기를 바라며 찍었죠. 스즈가 자전거를 타고 벚꽃 터널을 지나가는 신에서 얼굴에 벚꽃잎이 살포시 내려앉았는데, 그런 기적같은 순간이 유난히 많았어요. 네 자매의 인생을 지켜보는 듯한 착각에 빠졌습니다.”(고레에다)

 올해로 감독 데뷔 20년을 맞은 고레에다 감독은 “전쟁을 겪지 않은 세대가 전후 일본 역사를 어떻게 재인식해야할지를 다룬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나가사와는 “국경을 넘어 영화로 소통하는 것에 관심이 많다. 송강호 배우, 이창동 감독과도 영화를 찍고 싶다”며 환하게 웃었다.

부산=정현목 기자 gojh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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