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 클리닉] 발길 끊은 아들부부-경험자의 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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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저도 외아들 부부와 갈등을 겪으며 괴로워 했던 시어머니입니다.

두 딸을 먼저 시집보내고 며느리를 맞았을 때 기대가 참 컸지요. 처음 3년만 함께 살자며 분가를 시키지 않은 것이 '화근'이었는지 모릅니다.

함께 살며 직장생활을 하던 며느리가 '힘들겠구나' 생각도 했지만 '너무한다' 싶을 때도 많았답니다. 손자가 태어난 후 며느리가 직장을 그만뒀지만 저는 여전히 아들식구의 뒤치다꺼리를 해야했습니다.

자연스레 며느리에 대한 불만을 남편에게 쏟아놓게 됐고 처음엔 저더러 이해하라던 남편도 점점 괘씸한 마음을 갖게 됐나 봅니다. 남편이 며느리에게 잔소리를 하기 시작하자 하루는 아들이 대들더군요.

"요즘 이렇게 시집살이 하는 여자가 있는 줄 아느냐""엄마가 애라도 봐줬으면 직장을 그만두지 않았을 것 아니냐"는 등 아들 말을 듣는 순간 눈앞이 캄캄했습니다. 그후 분가시키기까지 한달 남짓 동안은 지옥과 같았습니다. 분가 후 반년 가까이는 연락도 없더군요. 그동안 저는 웃음을 잊고 살았습니다.

하지만 시집 간 딸들과 얘기를 나누며 며느리를 이해하자고 마음 먹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꿈꿔오던 부모.자식 관계를 고집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휴일이면 함께 만나 식사도 하고 놀러도 같이 가고 싶었거든요.

자식이 부모 용돈을 챙기고 안부인사도 주고 받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지요. 하지만 그런 기대가 무리라고 마음 먹었습니다. 큰 부담없는 좋은 인간관계를 유지한다는 선으로 기대수준을 낮추기로 했지요.

며느리와 사이가 한번 틀어지면 자꾸 갈등이 반복된다고 친구들이 조언해 줘 겁이 덜컥 났습니다. 갈등이 폭발하지 않도록 적당한 거리를 두고 예의를 지키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손자 돌을 계기로 다시 연락을 하게 됐습니다. 그 후로는 집에 오라는 얘기도, 찾아가겠다는 말도 하지 않습니다. 한달에 한번 정도 시내 음식점에서 만나지요.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손자 재롱도 보고 그러다 보니 며느리가 저희를 대하는 태도도 많이 부드러워졌습니다.

제 경우가 바람직하다고 생각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것 같네요. 아들이나 며느리나 부모로부터 받을 줄만 알지 줄 줄은 모르게 키운 책임을 우리 모두가 지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김영숙(가명.65.서울 송파구 방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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