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 산책] 전통과의 어울림-인사아트센터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14면

전통거리에 들어선 현대적인 건물. 이질적으로 느껴지기 쉬운 조건이다. 그러나 서울 인사동 한가운데 위치한 인사아트센터(사진(上), 오른쪽은 실내 모습)는 이질감 없이 거리 분위기에 슬그머니 어우러지고 있다.

외관은 검은 화강암과 유리, 직각형 등 전형적인 모더니즘 스타일이지만 출입구가 마치 인사동 거리의 연장처럼 이어지면서 지나가는 발길을 건물 내부로 끌어들이고 있다.

우선 건물의 간판 역할을 하는 가벽(假壁)은 전체 6층인 건물을 2~3층 정도로 느끼게 한다. 주변 3~4층의 작은 건물들과 조화를 이루도록 배려한 것. 건물이 인사동 거리를 내려 누르지 않게 만든 기술적인 장치인 셈이다. 가벽을 지나 대나무가 양옆에 늘어선 나무계단을 따라 실내로 들어서면 여러 개의 박스가 유기적으로 조합된 공간 한가운데에 선 기분이 든다.

출입구 정면의 생활아트센터와 2층 높이로 트인 현관홀, 6층 높이로 트인 계단실 부분 등이 각각 다른 크기의 박스들을 결합한 형태다.

건물 전체가 엄격한 절제와 질서로 짜여지면서 각각의 요소가 적당한 긴장감을 유지하고 있다. 다양한 예술품의 전시와 함께 건축물 자체로도 전시효과가 있어야 하는 원칙에 충실하다. 계단실 주변의 6층까지 트인 공간은 그리 크지 않은 건물을 시각적으로 확대시켜 시원한 느낌을 준다.

또 트인 공간 한가운데 위치한 누드 엘리베이터는 공간 전체에 생동감을 주고 있다. 누드 엘리베이터가 움직이는 조형물 역할을 하는 셈이다.

2층에서 5층까지 이어지는 전시실은 나무 계단으로 이어져 벽면의 검은 화강석이 주는 딱딱함을 완화해 주고 있다. 전시실들은 관람객이 너무 많은 작품에 질리지 않게 할 정도의 인간적인 스케일이다. 6층의 업무공간은 인사동 전체를 내려다볼 수 있는 열린 공간으로 마련했다.

인사아트센터의 설계는 프랑스의 건축가 장 미셸 빌모트와 국내 테트라 건축의 임상관 대표가 함께 맡았다. 빌모트는 인천국제공항의 인테리어 설계를 담당한 건축가로 유럽과 일본 등지에서 동.서양을 접목한 작품들로 유명하다.

공동설계를 담당한 임성관 대표는 "소박하고 현대적인 건물을 통해 인사동이란 도시적 유산의 가치를 알게 하는 것이 설계의 주안점"이라고 말했다. 도시의 맥락을 무시하고 건물 자체가 두드러지는 것을 철저히 배제했다는 설명이다.

인사아트센터는 최근 외국 건축가들이 마치 "나를 보라"고 소리치는 듯하게 설계한 몇몇 건물과는 뚜렷이 차별화되면서 주변 환경에 어울리는 건축물이 어떤 것인지를 조용히 보여주고 있다.

신혜경 전문기자
박종근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