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손 든 선거구획정위 “우리 손으로 합의안 도출 불가능”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0면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산하 선거구획정위원회가 법정 선거구 획정안 제출 시한(13일)을 지키는 데 실패했다. 획정위는 12일 전체회의를 열고 논의를 계속했지만 위원들이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내년 총선에서 지역구 의석수를 현행 246석으로 유지하자는 데까지는 위원들이 동의했지만 ▶농어촌 지역 의석수를 몇 석이나 줄일지 ▶줄어들 농어촌 지역구 중 영호남의 비율을 어떻게 할지 등을 놓고 여야의 입장을 대리한 위원들이 끝내 기존 입장을 고수했다. 여당 성향 위원들은 강원 1석·영남 3석·호남 5석의 축소를, 야당 성향 위원들은 강원 1석·영남 4석·호남 4석의 축소를 주장했다고 한다. 김대년 획정위 위원장은 회의가 끝난 뒤 기자들과 만나 “국민 여러분께 송구하다는 말씀을 전한다”며 “최종 합의안 도출에 실패했고, 내일 위원회에서 성명서를 낼 것”이라고 말했다.

 한 획정위 관계자는 “사실상 위원회 차원에서 획정안을 내는 건 불가능하다고 결론 내렸다”고 말했다. 그는 “회의 막판에 여야 입장을 각각 담은 ‘복수안’을 만들어 국회 정치개혁특별위로 넘기는 게 어떠냐는 중재 시도도 있었지만, 그마저도 합의에 실패했다”고 전했다.

 이에 따라 획정위가 13일 발표할 성명서는 ‘대국민 사과성명’ 형태가 될 것이라고 한다. 동시에 선거구 획정 작업을 더 이상 하기 힘들다는 ‘사실상의 활동 불가 선언’이라고 또 다른 관계자는 밝혔다.

 그는 “‘현재로서는 획정위에서의 추가 논의가 무의미하며, 여야가 농어촌 선거구 획정에 대한 기준을 먼저 정해서 제시해달라’는 취지의 요구도 담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획정위는 헌정 사상 처음으로 국회 바깥에 꾸려진 독립기구다. 여야가 지난 5월 “공정하게 선거구를 획정해보자”고 합의해 공직선거법을 개정한 결과였다. 게리맨더링(행정구역을 마구 쪼개거나 붙여 기형적인 선거구를 정하는 행위)을 막기 위해 위원장 자리도 중앙선관위의 김대년 사무차장에게 맡겼다.

 하지만 획정위는 지난 8월부터 2개월 이상 논의를 하면서도 획정안 마련에 실패했다. 특히 지난 8일부터 12일까지 닷새 동안 네 차례나 전체회의를 열어 밤늦도록 ‘마라톤 회의’를 했지만 시한 내에 결론을 도출하는 데 실패했다.

 이유는 1(선관위 출신 위원장) 대 4(여당 추천) 대 4(야당 추천)로 돼 있는 위원회 인적 구조와 3분의 2 이상의 동의가 필요한 의결 구조 때문이란 분석이다. 획정위 논의 과정에서 여야 성향 위원들의 입장 차가 뚜렷해지면서 8일 전체회의 때는 회의 전 위원들의 휴대전화를 압수하는 일도 벌어졌다. 위원들이 가까운 정당 관계자들과 통화해서 당의 입장을 대변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한 조치였다. 하지만 이런 시도에도 불구하고 각 정당의 입장이 고스란히 획정위에 반영되면서 대리전이 계속됐다. 한 획정위원은 “일부 위원들은 합의를 해줄 듯하다가도 잠시 정회를 하고 나면, 누구랑 어떻게 연락을 하고 왔는지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원래 주장을 고수하곤 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선관위는 물론이고 정치권에조차 “사실상 여야 추천 위원이 동수로 있는 현재 구조에서는 획정위 차원의 추가 논의가 무의미하다”며 “선관위를 3명으로 하고 정당 추천 위원을 각각 3명으로 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앞서 획정위는 8월 13일까지 국회 정개특위가 선거구 획정 기준을 여야 합의로 정해 제시해줄 것을 요청했다. 하지만 여야가 이 시한을 지키지 못하자 국회를 비판한 뒤 “자체 기준을 정해 선거구를 획정하겠다”고 발표하고 본격 활동에 돌입했다. 하지만 결국 2개월의 시도에도 불구, 사실상 자체적인 획정안 마련에 ‘백기’를 들고 말았다.

남궁욱·이지상 기자 periodista@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