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향기] "이 나이에 여행은 무슨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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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들 끼리나 가라." 늘 거절하시던 부모님이 이번엔 무슨 생각이 드셨는지 자식들의 설악산 여행에 합류한다고 하셨습니다. "딱 하루만 온천하고 먼저 집에 올란다. 집 오래 비우면 안되니까"라고 여전히 퉁기시면서.

모처럼 대가족이 여행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부모님 외 형제 부부 4쌍과 8명의 아이들. 너무 많은 인원이라 걱정도 들었습니다. 심근 경색증이신 어머니, 무릎 관절염으로 걸음이 불편하신 아버님을 생각해 펜션형 콘도 두 개를 예약했습니다. 교통 체증을 피해 오전 3시에 시골 부모님 댁에 들러 차에 모시고 설악산에 도착하니 어느덧 날이 저물고 있었습니다.

계곡에서 맘껏 뛰노는 아이들 모습에 흐뭇해 하시는 부모님 얼굴이 보기 좋았습니다. 실내 온천에서 칠십노인 넘어지실세라 손을 잡아 드리는 건 아이 끌고 다니는 것보다 더 힘들었지만 부모님은 "어때요. 좋으세요?"라고 연신 물어보는 자식들 앞에서 대답도 잊은 채 싱글벙글하셨습니다.

"계곡물 덕분에 당뇨가 없어졌다"고 별로 신빙성 없는 말씀도 하셨고, 하루만 계시겠다던 분들이 '가자' 소리 한번 안하시더라고요. 우리 일행에 주변의 시선이 모이자 나는 자랑스럽게 "우리 대가족 사진좀 찍어 주세요"라며 사진기를 맡기기도 했습니다. 2박3일간 즐기다 돌아오는 길엔 당신들 좋아하시는 쌈밥도 대접했습니다. 두 분은 이전에 중국.제주도.호주도 다녀오셨습니다. 하지만 자식들이 함께한 이번 여행은 남달랐을 겁니다.

여행 후 건강이 걱정돼 전화드렸더니 잠이 깊게 드셨는지 한동안 응답이 없었습니다. 간신히 통화가 되자 하시는 말씀. " 전화했었냐? 자느라고 못들었구나." "너무 피곤해서 어떡해요?" "뭘, 집 생각 하나도 안 나더라야." "다음에 또 가실래요?" "그럼. 또 가야지."

김옥련(서울 양천구 신정6동.40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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