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의 존재 이유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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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8호 27면

신부 되는 날을 1년 남짓 앞둔 신학생들에게 강의 도중 질문을 던져보았다.


“길에서 유럽인 가톨릭 신자와 한국인 개신교 신자의 다툼이 벌어졌다면 여러분은 누구 편을 들 것 같은가?”


무슨 질문인지 알아차린 학생들은 대답하기 난처하다는 표정으로 서로 두리번거리며 내가 무슨 말을 이어갈지 기다렸다.


인구 3만 명이 될까 말까 한 경산시 하양읍에 있는 종교단체와 시설만 헤아려 보아도 우리나라의 종교 현상을 대충 짐작할 수 있다. 밤하늘을 붉은 빛으로 수놓는 교회의 첨탑 수는 반경 2㎞ 안에 최소한 열 개가 넘을 것이다. 조계종·천태종·태고종 등 불교 각 종파의 절도 가까이 여럿 있고 조금만 나가면 곳곳에 보인다. 인근 팔공산에 있는 크고 작은 절의 수는 70개를 넘어선다. 여기저기 들어서 있는 굿당의 수가 얼마나 되는지 알기 힘들다. 이런 시설을 유지·관리하는 데 드는 경비가 적지 않을 것이고, 그 안에서 종교 행사를 하면서 먹고사는 사람들이 생활비를 비롯한 여러 가지로 사용하는 경비도 상당할 것이다.


그럼에도 이들이 일상과 직업전선에서 입은 사람들의 상처와 고단함을 위로하고 치유하는 데 크게 기여한다면 존재할 가치가 있는 것이다. 이들이 지금까지 나름대로 유지되어 온 것을 보면 어떤 긍정적인 역할이 있을 것이다. 그 수가 아직도 늘어나는 것을 보면 사람들이 꾸준히 왕래하면서 물질적·정신적 지원을 아끼지 않는 것 같다.


그러나 내가 이런 글을 쓰는 것을 생각해 보면, 이런 현상에 대해 무엇인가 불편함을 느끼고 있는 것 같다. 우리 민족은 남에 의해 강제로 남북으로 갈려져서 서로가 엄청난 물질적·심리적·인간적 소모를 하고 있다. 남한은 심리적으로 동서로 분열된 것을 아직도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세대 갈등, 빈부 갈등, 정규직과 비정규직 갈등 등 많은 요소들이 우리를 분열시키고 불편하게 한다.


그런데 사람들이 화목하고 평화롭게 살아가도록 안내하는 것이 중요한 존재 이유인 각 종교들 또한 우리를 분열시켜 놓은 지 오래 되었다. 그 분열을 고착시키고 있는 것으로도 보인다. 가톨릭 신자는 직장에서 이해관계로 함께해야 하는 타종교 사람들과의 교류 외에는 주로 가톨릭 신자들끼리 지낸다. 주일날 만날 수 있는 사람이 가톨릭 신자의 범위를 넘어서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점은 개신교 신자들도 마찬가지다. 개신교 신자들은 주일을 자신이 다니는 교회에서 오전부터 오후까지 지내기에 더할 것이다.


타종교를 알기 위해 노력하지 않으면 서로 무슨 생각을 하면서 살아가는지 잘 모른다. 같은 땅을 밟고 살고 있지만 삶에 대한 인식과 방식엔 거리가 있어서 이 땅에서 일어나는 어떤 사항에 대해 옳게 공감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사람마다 각자 자신의 개성과 의지에 따라 삶을 꾸려나갈 권리가 있듯이, 종교의 자유가 있는 대한민국에 존재하는 각 종교단체와 시설도 존재하고 활동할 권리가 있다. 그 때문에 다양한 종교와 종교시설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종교의 존재 이유를 생각해 본다면, 앞에서 든 여러 가지 요소들로 분열되어 고달픈 우리나라 국민들이 소통하고 화합하여 제대로 살아가도록 하는 데에 기여했으면 좋겠다. 이러한 일에 종파를 초월하여 서로 소통하며 협력하면 좋겠다. 실천하기 매우 힘든 것을 알지만 이런 말이라도 할 수 있는 세상이어서 그나마 좀 살 만한 것 같다.


전헌호 신부hhchun@c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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