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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념 권하는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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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전수진 기자 중앙일보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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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수진
정치국제부문 기자

포기하고 집을 샀다. 거꾸로 ‘집을 사는 걸 포기했다’고 말하는 게 상식에 가깝겠지만, 현실은 상식을 따르지 못했다. 원래는 서울 모처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임과 함께 오손도손 살기를 꿈꿨다. 그때까진 세를 살아서라도 한 푼이라도 더 모으겠다는 거창한 계획도 세웠다. 하지만 전세로 살던 아파트의 소유주가 “1억원은 너무하니 9000만원이라도 올려 받아야겠다”고 전화를 걸어왔을 때, 그 꿈은 죽었다고 예감했다. 집주인의 처사에 분기탱천해서 “다른 전셋집을 구하면 되지”라고 온갖 곳을 헤집고 다녀도 봤다. 하지만 집주인의 요구가 결코 부당한 것이 아님을 깨달았다는 게 유일한 소득이었다.

 애당초, 꿈은 실현 가능성이 낮았다. 원했던 지역의 땅값은 요새 가을 하늘만큼이나 드높기 때문이다. 눈높이를 낮춰 전세가로 마련할 수 있는 집을 구했다. 정부의 주택시장 부양책에 어쩌다 보니 기여한 셈이다.

 의외의 소득은 있다. 포기를 하니 마음이 편해졌다는 것. 부동산 주인이 (도장을 다 찍고 난 후) “가격이 많이 오를 리는 없는 집이지만”이라고 얼버무렸지만 집으로 돈을 버는 건 우리에겐 이미 옛날 옛적 얘기다. 그나마 ‘내 집’을 가질 수 있는 것도 감사할 일이다. 자녀 교육에도 좋고 주거 환경도 끝내준다는 아파트의 가격은 천정부지로 솟아 있다. 오늘의 30대에게 ‘내 집 마련’이란 이룰 수 없는 꿈에 가깝다.

 꿈을 이루지 못하는 이들에게 선택지는 두 개다. 체념 아니면 분노. 오늘날 대한민국을 ‘헬조선’이라 부르며 부글부글 끓는 분노는 꿈이 사치가 돼 버리는 현실에 대한 반응일 터다. 청춘은 분노하지만 30대는 체념한다. 이를 두고 기득권층에선 지금은 체념을 할 때가 아니라고 우려한다. 존경하는 사회 원로들을 만나면 다들 “지금은 체념을 할 때가 아니라 신발 끈을 더 조여 맬 때”라고 한목소리로 충고한다.

 이 우려가 30대는 섭섭하다. 주변의 30대 가장부터 워킹맘, 싱글녀들의 반응을 종합해보면 “억울하다”로 귀결된다. “위 세대가 고생한 건 알지만 지금은 옛날과 다르다. 왜 1970~80년대식 사고방식으로 우리를 재단하느냐”고 볼멘소리를 낸다. 그러잖아도 세대 전쟁의 서막이 오른 지금, 그나마 사회 순리에 순응하는 30대 중후반까지 위험하다는 느낌이 드는 요즘이다. 20억원짜리 아파트를 못 사니 포기한 걸 두고 “더 열심히 돈을 모을 생각은 왜 못 하느냐”고 들으면 조금 많이 서운하다. 30대가 왜 체념을 하는지, 역지사지 공감을 기대하는 건 무리일까.

전수진 정치국제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