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현림의 '굿모닝 레터'] 정(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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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情)

눈 먼 아버지와 아들의 따뜻한 부성애-. 언젠가 그것을 TV 다큐프로 '인간극장'에서 다룬 걸 본 적이 있어요. 지난 주 그들의 이야기를 아들이 쓴 '아버지의 바다'란 책을 읽고, 부자의 거처를 찾았어요. 제부도 곁 대부도와 연결된 선재도. 온종일 비가 내렸지만 가는 길 내내 운치가 넘쳐 가슴이 떨렸습니다.

그들은 '바다향기'란 횟집을 운영 중이더군요. 바닷물이 보이지 않을만큼 미끈미끈한 갯벌이 넓게 펼쳐졌어요. 유럽 풍경에서나 본 듯한 파라솔과 식탁 그것을 받치고 누운 긴 마루바닥. 그 풍경을 아주 근사한 사진으로 남겼답니다. 저녁 무렵 아들은 망원경으로 아버지를 찾더군요. 비가 와도 아버지는 바다로 물고기를 잡으러 갔고, 아들은 아버지를 도우러 나갔습니다.

가슴 속 뜨거운 정이란 게 이런 걸까요. 잠들고 지친 기운을 되살아나게 하는 것. 바라보는 사람의 마음도 갓 구운 보리빵처럼 보들보들하게 만드는 게…. 마침 딸과 제 안부를 묻는 아버지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바닷가에서 받는 안부전화는 더 감동적입니다. 고마워요, 아버지. 거울같은 바다. 고독한 자신을 마주한 느낌입니다. 나 자신은 나를 사랑하고 내가 사랑하는 이들로 이루어졌음을 잊지 않겠습니다.

<시인.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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