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학자들 한반도 누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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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21면

과학기술 남북 교류에 봇물이 터졌다. 과학자들이 남북을 오가며 장기 공동 연구를 펼치는 프로젝트가 실시를 눈앞에 두고 있는가 하면 양국 과학기술자 간의 정례 학술 회의도 생겼다. 또한 북한과의 과학기술 정보 교환도 올해 시동을 걸었다.

이제껏 이뤄진 과학기술 교류가 옥수수 종자나 농약 등을 지원하는 것이었던 반면, 올 들어서는 실제적인 연구 협력이 대거 싹트고 있는 것이다.

교류의 하이라이트는 올해부터 5년간 계속될 한반도 식물 조사 사업. 과학기술부가 지원하는 자생식물이용기술개발사업단이 올초 북한 과학원과 공동 연구에 합의했다.

그 첫 단계로 7월 말 정혁 자생식물사업단장 등 6,7명의 과학자들이 북한에 가 앞으로의 일정을 확정한다. 정단장은 "10월에는 우리 과학자 20명이 북한에 가 한달 동안 이곳저곳을 누비며 식물 생태를 조사하고, 뒤이어 북한 과학자들이 와서 같은 활동을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군사지역 등 보안을 지켜야 하는 곳을 제외하고는 양측 과학자들이 어디든 자유롭게 갈 수 있도록 합의했다고 정단장은 덧붙였다.

공동연구에서 우리는 북측에 5년간 1백만달러(12억원) 상당의 실험.분석 장치와 탐사용 차량 등 이번 공동 연구에 쓸 장비를 지원하기로 했다.

10월에는 또 일본 도쿄의 올림픽청소년기념센터에서 양측 과학자들이 참여한 가운데 '통일 과학기술 심포지엄'이 열린다. 생명과학분야의 현황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어떤 분야에서 공동 연구가 가능한지 검토하는 자리다. 지난해 10월 처음 열린 뒤 성과가 좋다고 판단해 올해도 이어지는 것. 앞으로 정례화될 전망이다. 곧 시작될 한반도 식물 남북 공동 조사가 지난해 이 회의에서 거론돼 열매를 맺었다.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은 올해부터 북한 연구현황 정보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고 있다. 북한에서 자료를 직접 받는, 과기정보 교류 사업의 하나다. 어느 분야에서 어떤 성과가 나오고 있는지를 체계화해 과학기술자들이 협력의 기초 자료로 사용케 하려는 목적이다.

옥수수 지원 등 종래의 교류 역시 올초 북핵 사태가 불거진 와중에서도 차질 없이 진행돼 남북이 신뢰를 쌓는데 기여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과학기술부도 정치성이 없는 과기 협력이 통일 분위기를 가꾸는 데 큰 도움이 된다는 판단 아래 협력 사업을 체계적으로 추진할 기본 계획을 세우는 중이다. 이를 위해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은 지난 15일까지 한달 동안 정부가 지원할 남북 공동연구 과제 신청을 받았으며, 30여건이 접수된 것으로 알려졌다.

담당자인 STEPI 이춘근 박사는 "종전의 사업은 '공동 개발'이라는 이름 아래 일방적으로 우리가 물자를 지원하는 것이 많았다"면서 "이번에는 남북이 함께 연구의 산물을 낼 수 있는 과제에 높은 점수를 줄 방침"이라고 말했다.

권혁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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