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국민공천, 문제점 해소할 ‘제3의 길’ 찾아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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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28일 부산에서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와 만나 내년 총선에 ‘안심번호를 활용한 국민공천제’를 추진키로 잠정 합의했다. 그동안 우리의 선거사는 당 대표나 계파 수장들의 낙하산 공천·나눠먹기 공천으로 얼룩져왔다. ‘전략공천’이란 미명하에 이런 하향식 공천이 어떤 해악을 끼쳐왔는지 굳이 재론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전화 여론조사’란 꼬리가 달리긴 했지만 여야 수장이 유권자에게 공천권을 돌려준다는 국민공천제에 합의한 건 의미 있는 일이다.

 김·문 대표가 추석 연휴 중 전격적으로 잠정 합의를 이룬 배경엔 두 사람의 정치적 동기도 작용했을 것이다. 김 대표는 청와대나 친박계의 공천 영향력을 배제하려는 욕구가 컸을 것이다. 문 대표도 비주류를 무력화할 수단으로 국민공천제 도입에 찬성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유권자가 직접 공직 후보를 선택하는 국민공천제(오픈프라이머리)는 당 대표나 특정 계파가 영향력을 미치기 어렵다는 점에서 그 진보성을 부인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여전히 적지 않은 문제점이 남아 있다. 안심번호는 선거인단의 신분이 노출되지 않는다는 점에서만 ‘안심’일 뿐 역선택과 조직동원·중복응답 등 기존 전화조사의 문제점을 100% 해소한 것은 아니다. 또 안심번호 부여 대상이나 선거인단 구성방식은 정개특위에서 논의하도록 결론을 미뤘는데 여야의 입장차가 워낙 커 진통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신인·여성·청년·장애인에게 가산점을 주도록 법제화하는 것도 정당의 자율성을 제한하는 입법과잉일 수 있다. 지역구의 20%는 전략공천하겠다는 새정치연합의 자체 공천안도 뇌관이다. 새정치연합이 이 방안을 끝까지 고수하거나, 새누리당이 야당과의 형평을 이유로 전략공천을 부분 도입하면 국민공천제의 취지는 크게 훼손된다. 모든 유권자가 정해진 선거일에 오프라인상의 현장 투표에 참여해 후보를 선출한다는 것이 오픈프라이머리의 근본 정신이기 때문이다. 오늘 열릴 새누리당 의원총회에서 김 대표가 이런 문제점을 해소할 방안들을 충분히 확보하고 친박계를 설득하지 못한다면 잠정 합의는 말 그대로 ‘잠정’으로 끝나버릴 수도 있다.

 정당 공천 룰의 핵심은 제도나 방식이 아니라 공정성 확보 여부에 달렸다. 그동안 새누리당은 공정성보다 어떤 방식이 자신의 공천과 차기 당권 및 다음 대선의 향배에 유리할지만 따지며 친·비박계끼리 난타전을 벌여왔다. 자신들이 비난해온 새정치연합의 구시대적 권력투쟁과 똑같은 행태다. 집권여당의 내분은 국정 마비를 초래할 수 있다는 점에서 야당의 내홍보다 문제가 훨씬 심각하다.

 정치권에 대한 추석 민심은 싸늘하기 그지없었다. 민생은 제쳐둔 채 속보이는 공천권 싸움만 하고 있으니 좋은 얘기가 나올 턱이 없다. 여야는 이번 합의에서 드러난 문제점을 보완한 ‘제3의 길’에 속히 합의해 공천권 다툼에 종지부를 찍고, 정책 경쟁과 인재 수혈이란 본연의 임무에 복귀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