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래시장과 백화점 손 잡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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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영역 다툼'을 벌이던 재래시장과 유통 대기업이 '공존 모델'찾기를 시도하고 있다. 공동마케팅을 통해 백화점은 싸고 질좋은 물건을 소비자들에게 공급하고 재래시장은 대형 유통망을 확보하게 되는 '윈-윈 전략'을 세우자는 것이다.

건어물 전문 재래시장인 서울 중부시장(www.jungbumarket.com)은 다음달 4일부터 현대백화점의 압구정 본점.무역점.미아점.천호점 등 서울 5개점 식품관에 전용매장을 연다.

매장 규모는 15평 정도며, 중부시장의 대표적인 업소 여섯곳이 참여한다. 은어포.말린 다랑어 등 백화점에서 취급되지 않던 상품과 김.멸치.오징어 등 중부시장의 대표상품을 판다. 최고급 백화점 매장에 재래시장의 이름을 건 제품이 진열돼 백화점 상품과 나란히 판매되는 것이다.

백화점 측은 일정 기간 매장을 운영한 뒤 반응이 좋으면 중부시장 이외의 다른 전문 재래시장들과도 특설 매장 개설을 검토할 계획이다.

중부시장 김창호 인터넷사업본부장은 "소비자들에게 중부시장이 살아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판단해 백화점 측에 공동 마케팅을 제안했다"고 밝혔다.

현대백화점도 이런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시장상인들이 수십년간 쌓은 상품에 대한 노하우를 백화점 판매에 접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다양한 제품을 저렴하게 소비자들에게 공급할 수 있어 백화점으로서도 이득이라는 판단이다.

현대백화점 관계자는 "재래시장과의 공동마케팅은 유례가 없는 일"이라면서 "백화점이 그동안 다루지 못했던 특색있는 상품들을 고객들에게 선보일 수 있어 서로 이익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중부시장은 오는 8월부터는 TV홈쇼핑을 통해서도 자체 상품을 판매할 예정이다.

중부시장이 백화점과 홈쇼핑에까지 진출하게 된 것은 최근의 변신 노력이 결실을 본 덕분이다. 1957년 문을 연 중부시장은 현재 2천3백여개 점포에 하루 평균 1만명이 찾는 전국 최대의 건어물시장이다.

하지만 최근 대형 할인점 등 거대 유통업체의 급속한 팽창으로 상권이 눈에 띄게 위축되자 상인들 스스로 위기 극복에 나섰다.

중부시장은 올 초부터 자체 인터넷쇼핑몰을 열고 전국으로 상품을 배송하기 시작했다.

또 '차반누리'라는 공동 브랜드도 개발, 제품의 질과 가격을 균일하게 유지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최근엔 맥주 전문점 공략에도 나서 안주용 '차반누리'세트 상품을 50여개 업소에 공급하고 있다.

산업자원부 유통서비스정보과 김성환 과장은 "재래시장은 구조적으로 사양화하고 있어 정부도 자금 지원 외에는 뾰족한 수가 없는 형편"이라면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상인들 스스로 변화하려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조민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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