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칠, 舊동독 민주화 봉기 외면"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4면

50년 전 영국의 윈스턴 처칠 총리(사진)가 동독에서 일어난 첫 민주화 봉기를 외면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영국의 가디언지는 1953년 6월 17일 발생한 동독 주민의 항쟁 당시 처칠은 시위대를 돕기는커녕 오히려 진압에 나선 소련군의 자제력을 칭찬했었다고 보도했다.

신문은 독일 역사학자인 후베르투스 크나베의 주장을 인용, "처칠은 독일이 재통일되는 것을 두려워해 (동독 주민의 민주화 시위에) 개입하기를 거절했다"고 전했다.

심지어 처칠은 민주화 시위에 가담해 체포된 서베를린 대학생이 처형된 것을 비난했던 독일 주둔 영국 군사령관을 질책하기까지 했다.

또한 처칠은 소련이 동베를린 지역에서 폭동이 일어나도록 허용한 것에 놀라움을 표시하고 "(소련이) 대단한 자제력을 갖고 시위에 대처했다는 인상을 받았다"고 말했다.

최근 공개된 셀윈 로이드 당시 영국 외무장관의 메모도 시위대에 대한 처칠 정부의 냉담한 태도를 잘 보여준다. 그는 "독일이 분단돼야 더 안전하다고 느낀다. 그러나 여론을 의식해 감히 그 누구도 공개적으로 얘기하지 못했을 뿐"이라고 기록했다.

베를린 장벽이 들어서기 전인 53년 초여름. 동독 주민들은 동독 정권 퇴진, 자유총선거를 요구하며 거리로 뛰쳐나갔다. 동베를린 중심가인 스탈린 대로에서 건설노동자들이 벌인 대규모 항의 집회를 시작으로 동독 전역에서 수십만명이 시위에 가담했다.

소련군은 즉시 비상사태를 선포, 탱크를 투입해 시위를 진압했다. 진압 과정에서 소련군의 발포로 최소 50명이 목숨을 잃었다.

또 시위에 가담했던 20여명이 즉결 처형을 당했으며 1천여명은 '파시스트 정변을 기도했다'는 죄목으로 실형을 선고받았다.

유권하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