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호에 뒤덮인 '베르디의 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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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슈토 햄과 파르마산 치즈의 고장으로 유명한 파르마는 밀라노와 볼로냐 사이에 위치한 인구 16만명의 소도시지만 이탈리아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예술의 도시'다. 평화의 광장에는 베르디 기념비가 세워져 있으며 시립 공원묘지에는 파가니니가 묻혀 있다.

파르마 음악원은 베르디의 단골 대본 작가였던 아고리고 보이토의 이름을 따 명명됐다. 지휘자 토스카니니를 비롯, 소프라노 레나타 테발디, '아이다'의 초연을 지휘했던 조반니 보테시니도 이곳 출신이다.

1628년에 유럽 최대 규모의 실내극장으로 문을 연 파르네세 궁정극장(4천석), 파가니니 음악당(7백80석) 등이 관광객을 맞는다. 하지만 '음악 도시' 파르마의 핵심은 역시 1829년 문을 연 테아트로 레지오(왕립 오페라극장.1천 3백석)다.

지난 14일 낮(현지 시간) 최고 기온이 36도를 오르내리는 파르마의 무더운 날씨도 파르마 시민들의 오페라 관람 열기는 막지 못했다. 오후 8시 극장 앞 비좁은 도로엔 고급 승용차와 택시가 줄지어 도착했고 로비는 순간 고급 사교장으로 탈바꿈했다.

세계적인 바리톤 레오 누치가 주역을 맡아 열연한 베르디의 '나부코' 개막 공연은 까다롭기로 소문난 파르마 관객들의 박수갈채를 받았다. 3막 4장의 '가라, 내 마음이여, 금빛 날개를 타고'는 오랜 여운으로 남았고 이례적인 앙코르 요청으로 다시 부르는 진풍경을 연출하기도 했다.

'나부코'(1842)는 베르디의 출세작이다. 구약성서 중 '다니엘서'에 나오는 바빌론의 왕 나부코도노조르 (느부갓네살)의 이야기를 다룬 것인데, 바빌론 포로로 잡혀간 유대인들이 마침내 조국으로 돌아오는 광복의 기쁨을 노래했다. 파르마는 밀라노 초연과 빈 공연에 이어 이 작품의 세번째 무대다.

파르마 극장이 지난 4월 23일부터 이달 22일까지 진행 중인 베르디 페스티벌 2003의 마지막 작품이기도 하다. '나부코' 중 '노예들의 합창'은 1901년 베르디의 장례식에서 토스카니니의 지휘로 수천명의 합창단이 부른 노래로도 유명하다.

파르마 극장은 베르디 탄생 1백주년을 맞는 올해부터 2008년까지 매년 그의 생일인 10월 10일을 기해 베르디의 오페라 전곡 하이라이트 시리즈를 공연한다.

테너 플라시도 도밍고.호세 쿠라.마르첼로 알바레스 등 세계 정상급 성악가들이 출연한다. 2006년에는 주빈 메타, 2007년에는 정명훈씨가 지휘봉을 잡는다.

베르디 오페라에 대해선 남다른 자부심과 애착을 갖고 있는 파르마 극장에는 합창 단원 중 소프라노 김지은씨가 유일한 한국인으로 활동 중이다. 입장료는 5유로(약 7천원)짜리 입석에서부터 52유로(약 7만원)짜리 R석 다양하다(개막 공연은 78유로.약 11만원).

파르마 극장이 오는 9월 잠실 올림픽 주경기장에서 열리는 야외 오페라 '아이다'의 제작을 맡은 것도 관심거리다.

로마 시대의 원형 경기장에서 열리는 야외 오페라로 유명한 베로나 아레나 페스티벌에 참가하는 스태프들은 거의가 파르마 극장 출신이며 프랑스 랭스.이집트 룩소르 등 야외 대형무대에서 열린 '아이다' 공연도 파르마 극장에서 제작을 맡았었다.

서울 공연에서 파르마 극장 오케스트라를 지휘할 도나토 렌제티는 이집트 룩소르 무대에도 섰던 인물이다.

파르마(이탈리아)=이장직 음악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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