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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상보육 후진은 정치권 영합이 주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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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스더 기자 중앙일보 팀장
김회룡
김회룡 기자 중앙일보 차장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이에스더
사회부문 기자

지난 12일 전업주부 0~2세 자녀의 어린이집 이용 시간을 7시간으로 제한한다는 정부 방침이 국민들에게 알려진 뒤 찬반 논쟁이 뜨겁다. 찬성파는 “7시간이면 충분하다” 또는 “7시간도 많다”고 주장한다. 반대파는 “전업주부 차별”이라고 맞선다.

 이번 개편의 요지는 미취업모(전업주부) 아이는 7시간만 어린이집을 이용하고, 맞벌이·학생·구직자나 돌봄 수요가 있는 가정은 지금처럼 종일반(12시간)으로 이용토록 한다는 게 골자다. 가정 상황에 맞추려는 시도다. 이렇게 해도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지금도 전업주부 아동은 평균 6시간42분 이용하고 있다. 그래도 전업주부에게는 ‘복지 축소’로 비칠 수밖에 없다. ‘줬다 뺏는’ 모양새이기도 하다.

 0~2세 무상보육은 정치권 작품이다. 2011년 말 예산 심의 때 느닷없이 끼워넣었다. 여야는 사이 좋게 합의해 통과시켰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었다. 총선은 반년, 대선을 1년 남겨놓았을 때였다. 그때 채워진 그 단추 때문에 지금 이 논란을 겪고 있다.

 0~2세는 가정 양육이 우선이다. 이를 장려하기 위해 가정양육수당을 함께 손봐야 하고, 시설·교사의 사정을 감안했어야 했다. 하지만 그런 일은 뒷전으로 밀렸다. 너도나도 ‘보육사업’에 뛰어들었고, 아동학대·안전사고가 줄을 이었다.

 3년 전 요맘때 일이다. 보건복지부 국정감사에서 여야 의원들은 한목소리로 당시 임채민 장관을 공격했다. 전업주부 아이는 반일(半日)만 이용하고, 소득 상위 30%는 제외하겠다는 정부의 무상보육 개편안을 두고서다. 임 장관은 “준비 안 된 상태에서 100%로 확대하니 문제점이 많았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여야는 0~5세 무상보육으로 판을 더 키워버렸다. 당시 정부안이 일부라도 시행됐으면 지금의 혼란이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복지는 판을 벌이기는 쉬워도 거둬들이기는 정말 힘들다. 2005년 9월 김근태(작고) 복지부 장관이 서울아산병원을 방문한 자리에서 6세 미만 아동의 입원진료비 면제를 발표했다. 문턱이 낮아지면 이용자가 급증하게 마련인데 이런 점을 검토하지 않았다. 그 결과 입원이 크게 증가하자 2년 만에 어렵게 폐지했다. 정부가 “기초연금과 중복된다”는 이유로 지자체의 장수수당 폐지를 지시하자 지자체가 진퇴양난에 빠져 있다.

 복지 확대는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러려면 앞뒤를 재야 한다. 독일은 1~2세의 어린이집 이용 허용을 발표하며 6년 뒤에 시행했다. 소득·여건·취업여부 등을 따지지 않고 무차별적으로 보육 지원을 하는 나라는 없다. 지금은 2011년과 그 다음 해에 연거푸 잘못 채운 단추들을 풀 때다.

글=이에스더 사회부문 기자
일러스트=김회룡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