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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약산업, 세계 7대 강국 되려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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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폴 헨리 휴버스
한국릴리 대표

정부는 3년 전 국내 제약산업을 2020년까지 세계 7대 강국 수준으로 올려 놓겠다는 정책 목표를 발표했다. 2012년 당시 2조3000억원이었던 국내 제약산업 수출 규모를 2017년까지 11조원으로 확대하고 국내 제약사 한 곳을 세계 50위권에 진입시키자는, 이른바 ‘파마(Pharma) 2020’이다.

 그렇다면 3년이 지난 지금 성과는 어떨까.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최근 3년간 신약 개발 분야에 총 1조9000억원에 달하는 대규모 ‘기술 수출’ 실적이 있었다고 밝혔다. 특히 올해 초 이뤄진 한미약품과 일라이 릴리 간의 면역질환치료제 개발 협력 계약은 정부의 파마 2020 비전 선포 이후 첫 번째 가시적인 성과라는 점에서 큰 관심을 받았다. 과감한 신약 연구 투자를 통해 글로벌 제약사로 발돋움 하고자 하는 한미약품의 도전과 포트폴리오를 강화해 환자들에게 새로운 치료기회를 제공하고자 하는 일라이 릴리의 핵심 가치가 만나 연구개발(R&D) 협력이라는 공동의 비전을 갖게 된 것이다. 실제로 한미약품과 일라이 릴리 간의 파트너십 이후로 최근까지 글로벌 제약사와 국내 제약사 간의 최대 규모의 협력 체결 소식이 연이어 전해지기도 했다. 외부 기술과 지식을 활용해 기업의 효율성을 높이는 경영전략으로서 각광을 받는 ‘오픈 이노베이션’의 시대다.

 2020년까지는 이제 5년 남았다. 지난 3년 간의 기술수출 실적이 매우 높았더라도 실제 ‘신약 개발’이라는 결과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더 많은 협력과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하다. 파마 2020을 위한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고 국내제약사와 글로벌 제약사간의 파트너십을 더욱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투자 활성화 및 지원 정책이 속도를 더 높여야 한다. 또 제약산업계 외에도 정부·학계·비영리단체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들 역시 신약 R&D를 위한 협력에 참여하는 모델이 필요하다.

 최근 바이오 제약 산업에서 세계적 강자로 발돋움하고 있는 중국은 우리에게 좋은 시사점을 주고 있다. 사실 의료 기술이나 인력 수준만 놓고 보면 한국은 중국보다 우수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이 최근 무서운 경쟁력을 갖추게 된 계기는 정부의 전폭적인 정책적 지원 덕분이다.

 중국 정부는 2012년 제약산업을 중국의 국가 7대 전략 산업 중 하나로 지정했고, 중국 내 바이오 제약 관련 R&D 투자는 2007년부터 6년 간 연평균 33%씩 증가했다. 이는 세계적인 글로벌 기업들의 뜨거운 관심을 끌어내 아시아 R&D 센터를 유치하고 항암제 신약 공동 연구 개발로 이어지는 등 ‘오픈 이노베이션’ 사례들이 나왔다.

 한국 정부도 다양한 지원 정책들을 통해 바이오 제약 산업의 육성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 다만, 아쉬운 것은 어렵게 개발된 혁신적인 신약에 대한 가치 인정이 실제 약가(藥價) 정책에 반영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다. 신약 하나가 만들어지기까지 소요되는 엄청난 시간과 천문학적인 비용 및 노력에 대한 적절한 보상이 있어야 성공적인 ‘오픈 이노베이션’ 사례와 지속적인 신약개발 선순환이 가능할 것이다.

폴 헨리 휴버스 한국릴리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