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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포르 취업, 영어 실력부터 갖춰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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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서정하
주싱가포르 대사

청년실업 문제가 심각하다. 이 때문에 많은 청년이 해외로 눈을 돌리고 있다. 최근 몇 년간 적도에 위치한 싱가포르에도 일자리를 찾는 한국 청년이 눈에 띄게 늘었다. 특히, 싱가포르가 마이스(MICE) 산업으로 유명하다 보니 호텔리어의 꿈을 안고 싱가포르를 찾는 젊은 여성이 늘고 있다. 이는 싱가포르가 해외취업지로서 갖는 매력 때문인 것 같다. 싱가포르는 정부의 적극적인 외국인력 유치 정책으로 외국인 취업이 비교적 쉬울 뿐 아니라 7000개가 넘는 다국적 기업이 소재해 있어 해외 경력을 쌓기에 유리한 곳이다.

 그러나 성공적인 취업 기회를 찾으려는 청년에게 이곳의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다. 우선 아직 이렇다 할 직무 경력이 없는 대졸 청년에게 싱가포르 취업은 만만한 일이 아니다. 필요한 인재임을 인정받을 수 있는 자격증과 경력이 없는 경우 서비스업 등의 저숙련 직종에서 일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물가가 비싸기로 유명한 이 나라에서 서비스 직종의 낮은 월급으로는 저축은 고사하고 생활비도 감당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실제 호텔리어를 꿈꾸고 오는 이들 중 상당수가 해외 취업에 대한 기대감과 현실의 괴리를 느끼고 한국으로 돌아가고 있다.

 뿐만 아니라 고급인력에도 취업의 문은 점점 좁아지고 있다. 현재 상당수의 한국 인재가 이곳 외국기업의 고소득 전문 직종에 진출해 있으나, 요즈음은 그런 일자리를 얻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 경제적 요인도 있지만 지난 수년간 급증한 외국 인력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려는 싱가포르 정부의 정책과도 맞물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보다 낮은 임금에도 일할 수 있는 싱가포르인이 많은데 굳이 한국인을 고집하지 말라는 싱가포르 정부의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고 길이 막혀 있는 것만은 아니다. 한국 청년이 충분한 영어 실력을 갖추고 취업 전망이 밝은 틈새시장을 공략한다면 가능성은 열려 있다. 이곳에서 한국인 엔지니어의 우수성을 인정하면서 채용하고 싶다고 말하는 공기업이나 민간기업의 경영자를 심심치 않게 만난다. 그런데 한국인 엔지니어가 실력이 좋음에도 영어 소통이 원활하지 않아 채용이 어렵다는 것이다. 이곳의 호텔 관계자로부터도 비슷한 말을 듣는다. 한국인이 성실하고 일을 잘하지만 영어 구사력 때문에 더 나은 자리에 채용하는데 어려움이 있다고 한다.

 최근 고질적인 청년 실업문제 해소를 위한 돌파구를 해외에서 찾으려는 정부 차원의 노력이 강화되고 있다. 그런 점에서 해외취업지로서 상대적으로 기회가 많은 싱가포르는 우리 정부가 당연히 관심을 가져야 할 곳이고 가질만한 곳이다. 그렇지만 한 명이라도 더 많은 한국 청년들이 취업할 수 있도록 도와주려면 취업여건과 전망을 포함한 현지 실정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필요하다. 또한 박봉과 어려운 근무 여건 때문에 어렵게 결심한 해외 취업을 중도 포기하는 사례가 반복되지 않도록 세심한 지원과 준비를 해야 한다.

서정하 주싱가포르 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