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위병 비난 들으며 왜 개혁주체 세력 만들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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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盧武鉉)대통령은 왜 '공식.비공식 개혁 주체세력'을 만들려 할까. "완장 찬 홍위병을 만들려 한다"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말이다. '공무원 조직의 분열'이란 지적도 있다. 그러나 盧대통령은 16일의 전국 경찰서장 특강에서 같은 얘기를 할 예정이다. 17일의 정례 국무회의에서도 다시 강조할 예정이란다. 야당의 반대 같은 건 괘념치 않겠다는 자세다.

그런 생각을 갖게 된 이유는 두 가지다. 우선은 파트너십의 문제다. 盧대통령이 뚜렷한 정치세력이 없다는 점 때문이다. 실제로 지금의 민주당은 노무현당이라 할 수 없다. 그렇다고 신당작업이 잘 풀리지도 않는다. 결국 공무원을 자신의 개혁 파트너로 삼겠다는 계획이다.

盧대통령의 핵심 측근은 이렇게 말했다.

"정치개혁도, 신당 작업도 지지부진한 상황에서 대통령이 생각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카드 아니겠느냐. 만약 내년 총선에서 대통령이 생각하는 정치개혁이 성공하지 못했을 경우를 생각해 봐라. 참여정부의 유일한 개혁 파트너는 행정부밖에 없다."

그는 이미 인수위 시절부터 그 같은 구상을 해왔다고 설명했다.

그래서 조각 직후의 차관 인사에서도 그런 구상이 반영됐다는 것이다. 盧대통령은 인사 담당 참모들에게 "행정부 개혁은 내부 동력이 생겨, 이끌어가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정부 부처내 개혁을 이끌어갈 중심인물이 있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이들의 직급을 올려놓을 필요가 있다"는 취지의 당부도 있었다는 후문이다.

그래서 정부 부처의 기획관리실장 중 7명을 차관급으로 격상시켜 놓았다는 것이다. 기획관리실장에게 부처 내 공식 개혁 주체세력의 조직과 운영을 맡기려는 것도 그 때문이라 한다.

둘째 이유는 정부 내의 혼선을 정리하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盧대통령이 최근 청와대와 정부 내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참여정부의 보수화.우익화 필요성' 목소리에도 분명한 선을 긋고 갈 필요성을 느꼈다는 게 한 핵심 측근의 설명이다. 얼마 동안 진행된 盧대통령의 보수화.우익화 행보로 건진 게 아무 것도 없다는 판단을 하기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최근 청와대 주변에서는 '8인 회의'니 '6인 회의'니 하는 비공식 회의에서 참여정부의 보수화에 대한 필요성과 이를 위한 각종 아이디어가 대통령에게 올라가고 있다는 얘기가 새어나오고 있다. 그것을 두고 내부세력 간 개혁의 방향과 속도에 대한 갈등이 있다는 소문으로까지 번지는 상황이다.

청와대 한 386 참모는 "최근 대통령의 일부 행보가 개혁의 후퇴로 비춰지면서 참여정부의 정체성 위기가 제기되고 있다"면서 "이번 개혁 주체세력 발언은 '초심으로 돌아가겠다'는 뜻이 강하게 담겨 있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따라서 대통령이 직접 관료들을 상대로 자신의 개혁의지를 각인시키겠다는 게 이번 발언의 배경이란 것이다. 결국 조직을 통한 코드 맞추기가 아니라 1대1 쌍방향 의사소통에 의한 코드 맞추기를 하겠다는 게 대통령의 생각이라고 참모들은 설명했다.

이수호 기자

- 盧대통령 공직사회 관련 발언 -

▶"모든 고급 공무원이 행정고시라는 단일 경로로 채용되므로 기수가 생기고 서열이 생기는데 이를 해결하기 위해 채용 경로를 다양화해야 한다. 이는 만만치 않은 개혁이기에 5개년 계획을 세우겠다."(2003년 3월 8일 장관.청와대 수석 워크숍)

▶"나는 공무원에게 반감이 없다. 정말로 신뢰와 호감을 갖고 있다. 공무원은 개혁 대상이 아니라 개혁 주체다. 5년 동안 눈감고 행정의 구조적 문제들을 개혁하자. 얼렁뚱땅하지 말고 스스로 계획을 세워 줄일 데가 있으면 줄이자."(5월 3일 차관급 공직자 워크숍)

▶"정권이 바뀌면 전 정부에서 일하던 사람을 다 조사해 잡아넣고, 소위 사정이라고 해서 공직자들의 기강을 잡는 등 '신정부증후군'이란 게 있는 것 같으나 나는 그런 것을 바라지 않는다."(5월 18일 전남대 특강)

▶"개혁과 국민통합이란 포부가 있지만 결국 공무원들이 하는 것이다. 공직사회가 개혁을 제대로 해내지 못하면 어떤 계획도 소용이 없기 때문에 정부혁신이 모든 개혁의 출발점이자 마지막이다."(6월 12일 3급 이상 공무원 대상 인터넷 조회)

▶"각 부처에 공식.비공식의 개혁 주체 조직을 만들겠다. 대통령의 국정 방향과 반대로 가거나 안 가는 사람, 옆길로 가는 것은 용납되지 않을 것이다."(6월 13일 전국 세무관서장 특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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