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가게] 봉사 나선 조앤 허버드 美대사 부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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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자원활동가는 매장을 열기 한 시간 전에 도착해야 합니다. 사물함에 소지품을 넣고 앞치마와 이름표를 착용한 뒤 청소를 하고 물품을 진열해 손님 맞을 준비를 합니다."

지난 1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안국동 아름다운 가게 본부 3층에 있는 회의실 겸 물류창고.

아름다운 가게에서 자원봉사활동을 하려면 반드시 거쳐야 하는 '자원활동가 오리엔테이션'에서 돋보기를 쓴 외국인 여성이 직원의 설명을 들으며 깨알 같이 메모를 하기도 하고 때로는 "가격표가 없는 물건은 어떻게 하죠""물건 담는 봉투는 무료인가요"라는 질문을 던졌다.

이달 말부터 일주일에 하루, 네시간씩 아름다운 가게 독립문점에서 자원봉사를 하게 될 조앤 허버드 주한 미국대사 부인이 자원활동 교육을 받는 모습이었다.

데님 재킷에 흰색 셔츠와 베이지색 면바지, 빨간색 단화를 신은 캐주얼한 차림으로 나타난 허버드 대사 부인은 "내가 속한 지역사회에 기여하고 싶어 아름다운 가게 독립문점에서 자원활동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중구 정동 덕수궁 옆에 위치한 미국 대사관저에 살고 있으므로 자신의 '이웃'과 '지역사회'는 독립문점과 가깝기 때문이다.

허버드 대사 부인은 지난해 말 아름다운 가게를 처음 방문했을 때부터 자원봉사를 하고 싶었으나 곧바로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한국어가 아직 초보단계여서 한국 손님들과 직접 접촉하기 어려울 것 같아 겁을 먹었다. 그러다 최근 용기를 냈다.

눈빛으로, 손짓으로도 자원활동이 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아름다운 가게에서 영문 자료 등을 번역하는 자원활동가가 허버드 대사 부인과 함께 독립문점에서 자원봉사를 하게 돼 한결 마음이 가벼워졌다.

허버드 대사 부인은 자원봉사 이전에도 아름다운 가게에 안 쓰는 물건을 수시로 기증해 왔다. 토머스 허버드 대사가 선물로 받은 골프 티셔츠를 기증품으로 내놓았다가 대사가 어느날 그 티셔츠를 찾는 바람에 놀란 적도 있었다고 전했다.

그는 "미국에도 쓰던 물건을 기증하고, 손질해 되팔아 수익금으로 어려운 이웃을 돕는 가게가 많아 아름다운 가게에 친밀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요즘도 미국에 갈 때면 한국계 미국인인 단짝 친구가 자원봉사하는 병원 재단 소속 중고용품 가게에 들러 함께 창고에서 물건을 정리하고 가격을 매기는 것을 돕는다고 설명했다.

허버드 대사 부인은 다양한 모임 또는 단체에 속해 있어 바쁜 일정 때문에 당초에는 한 달에 한번 자원봉사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오리엔테이션을 받으면서 보통 자원활동가들이 일주일에 한번씩 봉사활동한다는 설명을 듣자 매주 한번 참여하기로 결심했다.

"독립문 매장에서 어떤 일을 할 것이냐"는 물음에 그는 "창고에서 물건을 정리하고, 매장에 빈 옷걸이가 있으면 창고에 갖다놓고, 물건이 바닥에 떨어져 있으면 올려놓고, 물건을 담는 봉투가 필요한지를 묻고 물건을 담아주는 일까지 나를 필요로 하는 모든 일을 열심히 할 각오가 돼 있다"고 답했다.

"하루 네시간 서서 일할 정도로 체력에 자신이 있느냐"며 나이를 묻자 "사람들이 '아줌마'라고 부르는 것을 참고해 달라"며 나이를 밝히길 거부했다.

그리고 "'아줌마'라고 불리는 게 정말 싫어서 아줌마라고 부르면 돌아보지도 않는다"며 웃었지만 허버드 대사 부인은 어디서나 만날 수 있는 이웃집 아주머니 같은 푸근한 모습이었다.

박현영 기자

*** 허버드 대사 부인은 미국 워싱턴D.C.에서 태어나 1965년 버몬트주에서 대학을 졸업한 뒤 이듬해 토머스 허버드 대사와 결혼해 남편을 따라 도미니카공화국.일본.프랑스(OECD).말레이시아.필리핀 등지에서 살았다. 2001년 10월 주한 미국대사로 임명된 남편을 따라 한국에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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