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경제 view &

정부 정책, 작명부터 쉽고 눈길 끌게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08면

김수봉
보험개발원장

30여 년간 금융감독 분야에 재직하며 산업 발전과 소비자 보호를 위한 정책과 제도를 발굴하고, 개선하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늘 아쉬움이 컸다. 올바른 개선 방향과 좋은 금융 정책이라고 추진한 것이 매번 이해 관계자 간의 반대와 충돌로 무산되기도 했다. 그저 나만의 욕심이고, 자만이라고 치부하기에는 안타까운 점이 있었다.

 “왜 그랬을까?” 하고 곱씹어 보면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정책 내용의 전달력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생각해보니 정책의 제목부터 지나치게 핵심 단어의 축약형으로만 이뤄졌다. 전문적이라고 그렇게 제시하다 보니 일반 소비자와 언론에 바로 와 닿기에 어려웠다. 때론 정책의 긍정적 측면은 간과되고, 부정적인 요소만 떠올리게 됐다.

 지난해 이맘때쯤 활발히 논의되던 ‘자동차보험 사고건수제 도입’의 사례를 보면 이해가 쉽다. 해당 제도의 취지는 소수(15%)의 자동차 사고 다발자에게 보험료를 더 부과하고, 대다수(85%)의 선량한 보험 가입자에게 보험료 할인 혜택을 주고자 하는 제도였다. 그러나 제도 개선 내용이 알려지면서 사고시 과도한 할증에 대한 부담만 주로 부각됐다. 다수의 선량한 운전자에 대한 혜택은 언급되지 않았다. 결국 제도 개선 추진에 큰 어려움이 있었다.

 차라리 ‘자동차 사고 건수에 따른 무사고자 할인 우대제도’라는 용어를 사용했더라면 어땠을까. 무사고자에 대한 보험료 할인 혜택을 늘려 안전 운전과 사고 예방을 유인한다. 그래서 자동차사고 사망자·부상자가 줄어들어 사회적 비용이 감소할 거라는 제도의 취지를 쉽게 떠올릴 수 있게 했다면 추진력이 더 붙었으리라 생각한다. 지금은 많은 논의와 설명 끝에 제도의 도입이 확정됐으나 여전히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다.

 비슷한 사례로 최근 뜨거운 이슈인 ‘빅 데이터’도 있다. 빅 데이터를 잘 활용하면 산업 전반을 활성화하고, 국민의 편리성을 증진시킬 수 있다. 그런데 다른 이해관계자가 ‘빅 브라더’라고 프레임에 가둬놓으면 ‘개인정보보호에 대한 위해와 악용’이라는 이미지를 떠올리게 된다. 이렇게 되면 우리가 원하는 효과를 얻기 위한 진행이 더디어 지거나 중단될 수 있다.

 모든 쟁점에 대해 다양한 이해 관계자의 의견은 나름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다만 다수가 충분히 공감하고 이익을 공유할 수 있는 사안이 자칫 정책의 작명이나 브랜드화에 따라 흐지부지 사라지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이 있다. 즉 정책 전달(policy delivery)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얘기하고 싶다.

 한국에서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가 끝나자마자 중국 경기 둔화와 위안화 쇼크, 미국 금리 인상 예고 등과 같은 글로벌 악재가 겹쳤다. 제조업은 물론 서비스업까지 총체적인 저성장 위기에 봉착했다. 물론 외부의 악재 탓만 할 문제가 아니다.

 대내적으로 그간 경제 활성화를 견인할만한 이렇다 할 경제 정책이 제때 실행되지 못한 것이 우리 경제에 악영향을 끼쳐 온 근본 원인이라고 본다. 지금은 어느 때보다 산업 경쟁력을 회복하고, 내수 성장을 촉진할 수 있는 경제 정책을 강력하게 지속적으로 추진해 나아가는 것이 시급하다.

 그러나 이해관계자 측의 아우성과 이들 사이의 갈등에 가로 막혀 추진 동력이 반감되고 지지부진해지는 모습이 엿보인다. 이는 나날이 허약해 져가는 한국 경제를 구할 수 있는 골든타임을 놓치게 하는 요인이다.

 이제 허비할 시간조차 없다. 우선 당면한 위기가 진정한 위기라고 우리 모두 함께 공감해야 한다. 한편으로는 경제 개혁 정책의 본래의 의미와 효과가 정확히 전달될 수 있도록 더욱 전략적이고 끈질기게 고민할 필요가 있다. 이를 통해 경제 회복에 대한 국민적 공감과 기대를 얻어내어 정책을 강력하게 실현해야 한다.

 얼마 전 일본 출장에서 갔다 온 지인과 식사에서 나눈 대화가 기억에 남는다. 요즘 일본 대학생은 4학년에 기업을 골라서 가고, 3학년부터 ‘입도선매’된다고 한다. 또 도쿄 시내에서 언제부턴가 택시를 잡는데 꽤 애를 먹는다고 한다. 불과 몇 해 전의 일본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라는 얘기다. 일본 못지 않게 한국에서도 어서 빨리 ‘정책 전달력’이 효과를 냈으면 좋겠다.

김수봉 보험개발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