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국정운영의 3가지 함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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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새 정부 1백일을 지나면서 국정운영에 대한 담론이 분분하다. 심지어 국회에서조차 여야가 한 목소리로 국정불안을 공공연히 지적하며 정권지도부를 겨냥하는 판국이다.

그러나 대개의 논의는 문제의 핵심을 비켜가고 있다. 대통령이 못해먹겠다고 푸념을 해야 할 지경이면 분명한 쟁점의 핵심을 반드시 짚어봐야 한다. 그것은 바로 국정운영의 현실논리와 이상적 대응의 충돌에서 찾아진다.

*** 아마추어 개혁론자의 강박증

먼저, 새 정부 출범에 담긴 현실논리부터 점검하자. 어떤 정권이든 새로 시작할 때는 크게 두 가지에 집착한다. 첫째는 사람의 물갈이요, 둘째는 획기적 개혁의 추진이다.

선거를 치르고 탄생한 정권은 어차피 함께 고생한 팀부터 챙겨야 하고, 이들이 개혁을 서둘러야 하므로 소위 '코드'가 맞는 집단이 중심에서 의사결정을 좌우한다.

이런 현상을 두고 일각에서는 배타성과 편향성을 꼬집어 비판의 화살을 쏘아대는데, 따지고 보면 정권을 장악한 세력이 자기들끼리 해보겠다는 현실논리 자체는 나무랄 수 없는 것이 정치다.

그런데 여기에 함정이 있다는 것도 현실이다.

첫째, 코드가 맞는 팀 구성원의 국정운영 자질이 문제의 원천이 될 수 있고, 둘째, 개혁의 추진에 엄청난 저항이 나타날 수 있으며, 셋째, 국민 사이에 걷잡을 수 없는 갈등이 불거져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국정 담당자들이 이 점에 주목했어야 하고, 비판하는 측에서도 이 점을 간과하지 말았어야 했다.

첫번째 함정은 최고지도자를 비롯한 핵심 측근 및 정권주도팀 구성원의 민주화 운동 배경과 국정운영의 아마추어리즘 때문에 일견 이상주의적이고 혁명적인 강박에 사로잡혀 개혁을 성급하게 추진함에 있어 수단과 절차를 소홀히 하고 기존 시스템의 협조를 얻는 데 어려움이 있다는 것이다.

배타와 독선의 지적을 받는 이유가 되기도 하고, 현실을 무시한 무모한 개혁이라는 비판이 나오기도 하는 까닭이 여기 있다.

이는 곧 두번째 함정과 이어진다. 개혁을 하려면 시스템이 함께 움직여줘야 하는데, 여기에는 불가불 현존하는 공직사회의 적극적인 동조.참여는 물론 언론.여론주도층 및 국민 일반의 지원이 필수적이다.

그런데 이들이 오히려 개혁의 대상이라는 이미지가 정권 핵심에서 형성돼 신속하게 공직사회와 국민 속으로 번져나가면, 공직자는 당연히 몸을 움츠리고 복지부동 자세로 눈치작전에 돌입하며, 부정적인 여론이 들끓기 시작한다. 이것이 세번째 함정으로 빠져드는 빌미가 된다.

초기의 개혁정책이 저항의 벽에 부닥치면서 민중주의(포퓰리즘)로 선회하고 일부 개혁작업이 타협 쪽으로 키를 틀게 되면 지지층의 항의가 집단행동으로 돌출하고, 반대쪽에서도 큰 목소리를 내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우리 사회가 아직도 격렬한 갈등의 행태밖에 모르는 미숙한 사회로 남아 있는 한, 정권 초기부터 일기 시작하는 온갖 이익집단 간의 요란한 분쟁은 시쳇말로 너무도 자연스러운 현실이다.

*** 개혁과 변화 국가목표 제시를

이 같은 현실논리에서 탈피하려면 국가적 차원의 이상적 목표에 대한 성찰과 이를 둘러싼 국민적 합의도출이라는 이상적 대응에 더욱더 적극적으로 나설 필요가 있다.

국가적 수준의 이상에서 출발하게 되면, 새 정권이 가장 먼저 착수해야 할 과업은 코드가 맞는 팀끼리 서둘러 개혁에 나서는 일이 아니라, 오히려 선거라는 경쟁과정에서 드러난 차이와 반대를 변증법적으로 종합해 온 국민이 환영할 만한 국가목표를 제시하고 이를 위한 개혁과 변화에 온 국민과 이익집단이 동참하도록 하는 일이어야 할 것이다.

한편, 반대쪽이나 비판세력은 무조건 저항으로 방해만 하려는 치졸함을 졸업하고 국가적 이익을 위해 정권에 힘을 실어주는 과감한 변신이 필요하다.

우리의 현대 정치사를 성찰의 양식으로 삼는다면, 이와 같은 신선한 접근을 기대해 볼 만도 한데, 혼란만 거듭하니 안타까울 따름이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현실논리를 성큼 뛰어넘어 국가적 이상을 지향하는 용기가 아쉽다.

金璟東(KDI 국제정책대학원 /초빙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