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가 있는 아침]-'빛의 제국 2'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1면

-권혁웅(1967~) '빛의 제국 2' 부분

길의 저편에서 이편까지
빛의 통로가, 순식간에, 뚫려 나왔다
이 빛에 몸을 비추고 싶은가? 그가 물었다
다른 곳의 주민이고 싶은가?
그의 목소리는 낮고 고요했으나
거리는 더 적막했다
규칙적인 페달 밟는 소리가
어떤 절정을 암시하고 있었으므로
나는 내려가는 길을 걱정했다
은빛 바퀴가 어지러웠다
편안하지 않았으므로 나는 未安했고
미안했으므로 나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무표정한 도시 한가운데 '빛의 제국'이 건설되었다. 그 운영자는 '자전거 위의 큰 거울'이다. 그걸 알고도 도시인은 '적막하게' 반응한다. 빛의 제국이 '은빛 바퀴'를 굴려 이 도시를 뚫고 가는 동안, 도시는 한결같은 '불 꺼진 창문'이었다. 빛의 제국은 잠시뿐이었다. 그 뿐이다. 시는 끝까지 '미동이 없다'. 그러면 됐는데, 왜 이리 우울한 거지?

박덕규<시인.소설가>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