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한마디] "오늘날 드러내놓고 여성을 비하하는 종교는 거의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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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드러내놓고 여성을 비하하는 종교는 거의 없다. 그러나 모든 종교의 의식 저변에 깔려 있는 여성에 대한 편견은 아직도 존재함을 부정할 수 없다. 사실, 다른 어떤 분야보다도 가부장적인 사고가 지배하는 분야가 종교라고 할 수 있다."

이창숙 지음, 『불교의 여성성불 사상』(인북스) 중에서

이창숙씨는 불자(佛子)다. 불교가 지구상 어떤 종교보다 여성을 존중해온 종교라고 믿어왔던 그는 어느 날, 평소 열린 마음을 지닌 분이라고 믿었던 한 스님으로부터 의외의 말씀을 듣는다. "여자들, 해봐야 별수 있나. 내생에 남자 몸 받는 것밖에." 부처님은 여성이라는 존재를 차별하지 않으셨는데 왜 우리나라에서 여자는 남자의 몸으로 바뀌어야만 성불할 수 있다고 단언하는 것일까.

신문기자로 일하다 유신 치하에서 쫒겨난 뒤 늦깎이 학생으로 대학원에 들어간 이씨는 불교에서의 여성문제를 화두 삼아 깊은 공부에 들어섰다. "페미니즘은 불교적으로 말하면 인류의 공업(共業)에 도전하여 업장을 해탈하자고 주장하는 운동이다.

상의상관성의 법칙에서 볼 때 여성 억압은 여성만을 비인간화시키는 것이 아니고 남성도 비인간화시키고 있기 때문에, 페미니즘은 남성 인간화 운동이라고 말해도 틀리지 않는다."
이 책은 남녀 모두가 성불할 수 있는 혜안을 모색하는 글 모음이자, 굳이 불자가 아니더라도 수행자의 열린 마음과 유연한 심성을 다잡는데 길라잡이가 될 문구들로 그득하다. "수행을 통해 '남' '여'라는 업의 분별을 넘어서 그 평등성을 깨달으며, 연(緣, 조건)에 따라 '중심 이동'을 할 줄 아는 열린 사회를 만들어가는 것, 그것이 불교 페미니즘이 지향하는 바이다."

불교 페미니즘 뿐이랴. 기독교 페미니즘, 천주교 페미니즘, 원불교 페미니즘, 그 어떤 종교든 열린 사회를 향해 나가는 긴 호흡 속에서 모든 이가 평등한 세상 만들기에 하나 되었으면 하는 것이 이씨 꿈이다.

정재숙 문화전문기자 johana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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