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운업계 "회계기준 바꾸자"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8면

호황 땐 적자가 나고 불황이 되면 흑자가 된다-.

수억달러짜리 배를 달러로 사서 영업하는 해운업계는 환율 변동에 따른 손익의 규모가 커 장부상으로는 이런 일이 발생한다며 회계제도를 개선해 달라고 정부에 요청했다. 이를 위해 한국선주협회는 13일 '해운업의 외화환산회계제도 개선방안'을 주제로 세미나를 열었다.

선주협회에 따르면 해운사들은 불황 때인 1999년 영업이익이 전년도보다 27% 줄었지만 환율 하락으로 외화환산이익이 대규모로 발생해 재무제표상의 경상이익은 4천9백29억원까지 늘었다.

반대로 호황 때인 2000년에는 영업이익이 1조원을 넘었지만 9천억원이 넘는 외화환산손실 때문에 회계장부에는 오히려 8천1백96억원의 경상손실로 기록됐다.

외화환산손익이란 해외 금융기관의 융자를 받아 선박 등을 샀을 때 매년 환율 변동에 따라 부채의 규모가 달라져 발생하는 손익을 말한다.

중앙대 허영빈 교수는 이날 세미나에서 "환율이 내리면 수출 물동량이 줄어들어 해운업계의 매출이 주는 등 영업환경과 환율은 반대로 움직이는 경향이 있어 이 같은 일이 발생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한진해운의 경우 2001년 5백8억원의 경상이익을 냈으나 환율이 66원 오르면서 1천5백43억원의 평가손실이 발생해 당기순손실을 기록했다.

이런 일은 항공기를 외상으로 사들이는 항공업계에서도 마찬가지다. 대한항공은 2000년 2천2백억원의 영업이익을 내고도 2천8백억원에 달하는 외환환산손실 때문에 적자로 돌아섰다.

한진해운 관계자는 "외환위기 후 미국 기준에 따라 외화환산이익을 당해연도 재무제표에 반영하도록 변경했지만 달러로 결산하는 외국 선사들은 거의 영향이 없는 반면 원화로 결산하는 한국에서만 꼬리(외화환산손익)가 몸통(영업이익)을 흔드는 결과를 낳았다"고 말했다.

선주협회는 이같은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외화환산손익을 이연상각하는 방안을 한국회계연구원에 건의키로 했다. 10년 만기 부채면 손익의 10분의1만 당기에 반영하는 방법이다.

경희대 강병민 교수는 "기업들이 익숙한 방법인 데다 최소한의 제도 변경으로 가능한 대안인 만큼 단기적으로 도입해야 한다"면서도 "유럽 국가들은 대부분 이 제도를 폐지하고 있는 만큼 장기적으로 자산재평가제 재도입이나 환산손익을 관련자산(외화부채) 평가에 반영하는 방안 등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창우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