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美 상호신뢰 틈 생기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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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한·미 관계가 다시 서먹해지는 양상이다.노무현(盧武鉉)대통령이 지난달 15일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과 정상 회담을 갖고 ‘튼튼한 상호 신뢰 구축’을 언급한지 채 한달이 안돼서다.갈등이 표면에 드러나진 않았지만 서로에게 서운해할 상황이 자꾸 발생하고 있다.

우선 12일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열린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회담에 한국이 불참한 게 상호공조의 이상조짐이다.

대북 봉쇄 논의의 당사자격인 한국이 빠졌기 때문이다.워싱턴의 한 외교소식통은 “미국은 한국의 참석을 희망했으나 한국측이 거부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서울의 외교소식통은 “미국이 한국의 입장을 배려,참여를 권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또 회의 논의 결과가 한미간에 또다른 긴장을 조성할 가능성도 있다. 현지 외교소식통은 “이번 회의는 사실 북한을 압박하기 위한 국제 협력체제 구축을 논의하는 자리”라고 설명,‘대북 대화’에 무게를 싣는 한국으로선 논의의 결과가 부담이 될 전망이 크다.

‘만성’ 현안이었던 황장엽(黃長燁)전 북한노동당 비서의 미국 방문건도 ‘급성’으로 악화,한미간 미묘한 줄다리기가 벌어지는 양상이다.미 국무부는 지난달 29일 “黃씨가 미국에 오면 신변보장을 하겠다”고 한국 특파원단에 공식 확인했다.

한국 정부가 黃씨의 신변 안전을 이유로 방미를 거부할 것이라는 국내 언론 보도가 나온 직후였다.국무부 관계자는 12일 다시 “미국 입장은 불변”이라고 거듭 확인했다.황씨의 방미를 간접 촉구한 것이다.

한국 정부는 당초 황씨의 미국 방문을 허용한다는 입장이었다.워싱턴의 외교소식통은 “盧대통령 방미에 앞서 미국을 방문한 나종일(羅鍾一)청와대 외교안보보좌관이 긍정적 반응을 보였다”고 말했다.국정원도 같은 입장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때문에 황씨를 초청한 수잔 쇼티 디펜스 포럼 이사장은 줄곧 “이번엔 黃씨의 방미가 허용될 것”이란 낙관론을 폈었다.

그러나 상황이 바뀌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워싱턴의 한 한국문제 전문가는 “황씨가 미국에서 북한을 비난할 경우 생길 부작용을 한국이 우려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황씨의 방미가 다시 좌절되면 노무현 정부를 보는 부시행정부의 시각이 달라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워싱턴=김종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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