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집게 만평 43년, 풍자는 해도 모욕은 피하는게 원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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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캐나다의 만평가 테리 모셔와 그의 작품을 모은 책들. 미술을 전공하고 43년째 정치 만평을 그린 그는 “아주 어릴 때부터 만평가가 되고 싶었다. 그 안의 유머 때문이었다”고 했다. [사진 CICI]
모셔가 2011년 캐나다 일간지 ‘가제트’에 그린 김정은 만평. 정권 승계가 결정된 직후다.

수소 폭탄 앞에 서 있는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 그런데 입에는 아기용 젖꼭지를 물고 있다. 2011년 캐나다 몬트리올의 일간지 ‘가제트’에 실린 만평이다. 아버지 김정일이 사망한 후 정권을 이어받게 된 김정은을 풍자했다.

 그림을 그린 이는 만평가 테리 모셔(73). ‘가제트’에 1972년부터 지금까지 만평을 그리고 있다. 눈밭에 얼굴을 파묻고 넘어진 캐나다 전 총리 피에르 트뤼도(1993년), “할 수 있을 것 같아”라며 소심하게 포즈를 취하고 있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2012년) 등도 그의 ‘히트작’이다.

 25일 전화 인터뷰에서 그는 “최대한 강하고 날카롭게 그리려 하지만 개인적인 문제는 절대 건드리지 않는 것이 원칙”이라고 43년 ‘장수 연재’의 비결을 밝혔다. 이 원칙으로 풍자와 모욕의 경계도 확실히 긋는다. 그는 “예를 들어 어떤 정치인의 알코올 중독 등 문제는 내 만평의 주제가 될 수 없다”며 “공공에 영향을 미치는 문제에만 접근하고, 유머를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만평 게재 후 쏟아지는 항의와 불만은 오히려 즐긴다. “93년엔 캐나다 하원에서 내 만평이 주제가 되기도 했다”고 말했다. 한 의원이 그의 만평을 두고 전직 총리에 대한 모욕이라며 비판한 것이다.

그는 “이런 논쟁을 보면 자유 사회에서 만평이 토론을 일으킬 수 있다는 점에 대해 자부심을 얻게 된다.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라고 했다. 또 “만평은 우리가 우리 스스로를 돌아보며 웃을 여유가 있는지를 증명하는 시험 같은 것”이라고 덧붙였다.

 오랫동안 강한 논조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에 대해서는 “캐나다에 만평의 전통이 강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캐나다 건국 시점인 1867년부터 총리에 대한 아주 강한 만평이 나왔다”는 것이다. 43년 동안 그는 스타일 변화를 실험해가며 독자의 지지를 얻었다. “가끔은 사진·지도를 사용해 형식을 바꿔가며 독자를 놀라게 했다”는 것이다. 또 최근에는 컴퓨터를 이용해 최대한 새로운 것을 내놓으려 한다. 이렇게 오랫동안 변화하며 연재한 만평은 책 47권으로 묶여 나왔고 2012년에는 캐나다 만화가 명예의전당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모셔는 한국이미지커뮤니케이션연구원(CICI)이 여는 ‘문화소통포럼 2015’에 참석하기 위해 31일 한국에 온다.

그는 “그동안 만평에서 북한 문제만 다뤘을 뿐 한국을 소재로 할 기회가 없었다”며 “이번 방문에서 한국을 더 잘 알게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또 “캐나다가 미국·러시아라는 거대한 이웃 사이에서 해 온 고민을 한국이 중국·일본·미국의 틈에서 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며 “이 밖에도 여러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호정 기자 wiseh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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