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맑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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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마르크스와 사이버 스페이스? 낡은 시대의 유물과 장미빛 미래, 폭력과 혁명이라는 근육질의 거친 이미지와 메마르지만 정돈되고 나른한 회색빛 이미지. 신간은 이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조각을 매끄럽게 연결하고자 한다.

앨빈 토플러가 '제3의 물결'에서 정보화 사회를 유토피아적으로 묘사한 이후 현실은 그의 예견대로 흘러가는 것처럼 보인다. 누구나 컴퓨터에 접속해 자신의 의견을 밝히고 타인의 의견을 즉각 피드백 받음으로써 '정보의 민주화'가 도래한 듯 하고, 수십권의 백과사전에 담긴 정보가 인터넷을 통해 금새 검색이 가능해지는 등 땀과 노동으로부터 자유로워진 듯 싶다.

그러나 토플러의 예언대로 과연 우리는 더 많은 시간을 정신적 여유와 여행으로 보내고 있는가. 육체노동보다 훨씬 높은 효율과 생산성으로 인해 이전보다 더 많은 과실을 맛보고 있는가. 캐나다 웨스턴온트리오 대학에서 정보.미디어학을 가르치고 있는 저자는 '노(No)'라고 단언한다. 그래서 노동과 자본으로부터의 해방이라는 마르크스가 던졌던 과제는 여전히 유효하다고 주장한다.

저자도 정보 혁명이 가져다 준 성과를 인정한다. 정보화는 굴뚝산업으로 대표되는 산업사회로부터 우리를 구해내 육체 노동의 고단함을 감쇄시켰다. 그러나 토플러 같은 미래학자들은 미래를 너무 달콤하게만 그린다.

저자는 자본주의의 미래학이 현실의 모순과 갈등을 사소한 것으로 치부하면서 대중들이 더 이상 현실에 불만을 품고 저항을 둔화시키려는 의도를 감추고 있다고 본다. 토플러 등이 그려낸 미래란 자본주의가 원하는 미래, 자본이 주축이 되는 전지구화라는 것이다. 정보는 자본가들에게 더욱 모이고 정보를 유통시키는 첨단 기술은 새로운 자본을 축적시키는 수단이 될 뿐이다.

그러니 정보 혁명이 계급 갈등, 부의 집중이라는 고전적인 문제까지 해결하는 만병통치약이 되리라고 믿는 건 환상이라는 것이다. 정보 혁명은 신자유주의에 의해 전세계를 하나의 질서로 엮는 도구로 이용될 뿐이다. 정보화는 시장 논리와 세계화를 확대 재생산하는 핵심적 역할을 한다.

저자는 정보 고속도로를 추진하던 앨 고어 전 부통령은 기술도착증에 걸려 있고, 빌 게이츠는 사이버스페이스 산업의 우두머리라고 비꼰다. 이들은 사이버 스페이스에서는 시장 정보가 완전히 열려있고 거래비용이 저렴해 구매자의 천국이 열린다고 한다.

또 디지털 기술을 통해 부의 이동이 무한히 자유롭게 거래됨으로써 세계를 더욱 견고하게 결속시킬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저자는 정보 혁명의 포교자들이 거짓 선전을 벌이고 있다고 말한다. 앞서 얘기했듯 정보 기술은 자본가의 배만 불릴 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기술 혁신이 가져온 사이버스페이스라는 새 세상이 자본주의를 영속시키는 수단만은 아니라고 본다. 정보 기술은 마르크스주의자에게도 반(反)자본주의 투쟁을 할 수 있는 잠재적 토대인 것이다. 이를 위해 그는 안토니오 네그리의 '자율적 마르크스주의' 를 실천 방안으로 내세운다.

국가권력 장악이라는 '거대' 목표에만 매몰돼 있던 마르크스주의를 일상적인 삶의 영역으로 확장시키자는 자율적 마르크스주의에 대해서는 한국의 진보 세력도 관심이 높다.

저자는 한국어판 서문에서 한국은 1980년대 이후 반자본주의 투쟁의 수준이 높고 통신망이 발달해 사이버스페이스와 21세기의 마르크스주의를 접합하는데 유리하다고 주장했다. 즉 자율적 마르크스주의를 수용하고 비평, 중계하는 데 중요한 교차점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제3세계 노동력을 착취해 만든 유명 상표 의류를 반납하며 네덜란드 여성들이 벌였던 '깨끗한 옷입기 운동'의 웹사이트처럼 첨단기술을 활용한 '아래로부터의 전지구화'의 가능성이 한국 사회 도처에서 발견된다면서 한국 뿐 아니라 전세계의 지각있는 이들이 자율적 마르크스 운동을 위해 사이버 스페이스를 이용하자고 주장한다.

홍수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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