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 3자 회담 물 건너가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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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하와이에서 열린 한.미.일 대북정책조정감독그룹(TCOG) 관련회의는 북핵 해결의 틀을 바꾼 점이 가장 눈에 띈다.

3국이 양자간 협의에서 향후 대북 대화와 관련해 '한.일 양국이 포함된 확대 다자회의'에 원칙 합의하면서 베이징(北京) 북.미.중 3자회의 구도는 깨질 가능성이 커졌다.

특히 미국은 "다음번부터 5자(남북, 미.일.중) 이상의 다자회의가 돼야 한다"고 못박고 나서 북한이 주장하는 '선(先) 북.미 양자회담 후 다자회담'이나 중국이 선호하는 3자회담은 불투명할 수밖에 없게 됐다.

미국은 "대북 대화의 모멘텀 유지를 위해서는 신축적인 자세가 필요하다"며 사실상 3자회담 후속회담 개최를 희망한 우리 정부 입장도 단호히 거부했다는 후문이다.

일본도 미국과 한 목소리를 냈다. 미국은 북핵의 주요 당사자는 미국보다 한반도 주변국이며, 북한 문제의 포괄적 해결을 위해서도 주변국 참가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보여 왔다.

이번 회의는 또한 북핵 문제의 평화적.외교적 해결 원칙을 실질적으로 재확인한 데 의미가 있다. 3국이 조기에 북한과 다자회의를 여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한 것은 한.미, 미.일, 한.일 정상회담에서 합의한 이 원칙을 행동에 옮기는 것이기도 하다.

외교부 관계자는 "이번 회의는 대북 대화 재개와 관련된 부분에 많은 시간이 할애됐다"며 "대북 제재나 압박에 관한 얘기는 없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대북 대화 재개를 위한 3국의 발걸음이 빨라질 것으로 보인다. 현재로선 중국을 통해 북한에 다자대화를 타진하는 방안이 가장 유력하다.

미국으로선 북핵 해결에 발을 들여놓은 중국을 배려하는 차원에서도 이 방안을 채택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미국이 북한과 직접 접촉할 가능성은 작다.

문제는 확대 다자회의 쪽의 한.미.일 3국과 북.미 양자회담 개최를 바라는 북한 사이에 현재로선 공통분모가 없다는 점이다. 그런 만큼 향후 북핵 문제의 초점은 관련국이 대화의 접점을 찾을 수 있을지에 모아질 것이다.

이 과정에서 미국은 북한의 불법 외화벌이 차단 등 '외곽 때리기'를 통해 대북 압박을 가속화할 수 있고, 북한은 북방한계선(NLL) 무력화 등 북.미 간 협상을 위한 카드를 빼들 수도 있다. 북핵을 둘러싼 줄다리기는 이제부터 본격화할 것으로 보인다.

호놀룰루=오영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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