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장의 영상 사모곡 … 이별의 슬픔, 손에 잡힐 듯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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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주연을 맡은 마르게리타 부이(오른쪽). [사진 티캐스트]

부모의 죽음은 살면서 언젠가 한 번은 맞이해야 하는 일이다. 그렇다고 예고된 그 이별이 수월하게 느껴질 리 없다. 아무리 나이를 많이 먹었다 해도, 제아무리 현명한 삶을 살아온 사람이라 해도 담담하게 맞이할 수 없는 헤어짐. ‘나의 어머니’(원제 Mia Madre, 20일 개봉, 난니 모레티 감독)는 그 이별의 과정을 들여다보는 영화다.

 영화감독 마르게리타(마르게리타 부이)는 새 영화를 촬영 중이다. 마음처럼 돌아가지 않는 촬영 현장과 할리우드에서 데려온 괴짜 배우 배리(존 터투로)의 갖은 돌발 행동은 마르게리타의 속을 태운다. 점점 대화가 통하지 않는 사춘기 딸과 전 남편 그리고 애인과의 관계 역시 고민이다. 그런 마르게리타를 더욱 힘들게 하는 건 병상에 있는 어머니와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나의 어머니’는 이탈리아의 거장 난니 모레티(62) 감독이 자전적 경험을 녹여 만든 영상 사모곡이다. 감독이 직접 극 중 마르게리타의 오빠 지오반니를 연기 했다. 그는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자신과 어머니의 추억을 떠올리며 이 영화를 만들었다고 밝혔다. 불의의 사고로 아들을 잃은 정신과 의사의 절망을 그려 제54회 칸국제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감독의 전작 ‘아들의 방’(2001)을 떠올리게 하면서도, 상실과 치유를 다루는 감독의 시선은 그때보다 한층 더 깊어진 느낌이다. 올해 5월 열린 제68회 칸국제영화제에서 인간을 깊이 있게 성찰한 예술적 성취가 돋보이는 영화에 수여하는 에큐메니컬 심사위원상을 받았다.

 이 영화는 한순간도 부러 슬픔을 강요하지 않는다. 대신 부모와의 이별을 씩씩하게 받아들이기는커녕 어린아이처럼 어찌할 바 모르는 자녀의 심경을 차분하게 들여다본다. 모레티 감독은 마르게리타가 겪는 사소한 순간의 감정을 차곡차곡 쌓아올리며 이야기를 끌어간다. 때론 건조하기까지 한 화법인데도 마르게리타의 슬프고 혼란스러운 감정이 손에 만져질 듯 다가온다. 슬픔의 기운은 어떻게 일상의 작은 부분까지 파고드는지, 도저히 극복할 수 없을 것 같던 상실감은 어떻게 삶의 한 부분으로 자리하게 되는지에 대한 섬세한 묘사가 이어진다. 오래도록 병상에 누운 부모를 바라본 경험이 있는 관객이라면 이 영화를 바라보는 심상이 남다를 것이다.

 감독이 끝내 중요하게 전하는 건 ‘그래도 삶은 계속된다’는 아름다운 울림이다. 죽음의 목전에 선 어머니는 “무슨 생각 해?”라는 딸의 물음에 “내일”이라고 답하며 삶의 소중함을 일깨운다. 이 영화에서 가장 가슴 뭉클한 장면이자, 상실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향한 담백한 위로다. 12세 관람가. 상영 시간 106분.

이은선 기자 har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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