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일의 여행스케치] 강화의 거지 갈매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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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갈매기는 대략 15종 안팎이다. 모두가 물고기를 먹고 사는 육식 조류다. 종류에 따라 조금씩 차이는 나지만, 대개 하루에 10마리 안팎의 고기를 사냥한다고 한다.

살아 움직이는 물고기를 표적으로 하기 때문에 사냥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날씨의 영향도 많이 받는다. 바람이 잔잔하면 물 위에 그림자가 비쳐서 물고기들이 달아나고, 바람이 강하면 물결이 일어서 물속의 고기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노련한 갈매기라도 사냥 성공률은 30%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

사냥술이 서툰 갈매기들은 하는 수 없이 고깃배 그물에서 떨어지는 고기들을 주워서 배를 채운다.

얼마 전에 외신에서 읽은 이야기다.

미국 플로리다에 유명한 새우어장이 있어 갈매기들이 많이 모였다. 갈매기들은 스스로 사냥하지 않고 그물에서 떨어지는 새우만 주워 먹어도 배가 불렀다. 새우잡이배들이 새우가 더 많이 잡히는 다른 어장으로 가버리자 갈매기들은 갑자기 배가 고파졌다. 어린 시절 사냥법을 배워두지 못했던 갈매기들부터 한두마리씩 굶어죽기 시작하더니 나중엔 스스로 사냥할 줄 아는 늙은 갈매기 몇 마리만 남게 됐다는 소식이었다.

우리나라 갈매기라고 예외는 아니다. 고깃배들이 만선으로 들어오면 갈매기들도 배불리 얻어먹고, 빈 배로 들어오면 배가 고파진다. 강화 외포리 갈매기들도 배가 고프면 음식점에서 나오는 찌꺼기도 마다 않고 주워 먹는다. 먹고 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

언제부턴가 외포리 갈매기들에게 새로운 메뉴가 생겼다. 여객선 관광객들이 심심풀이로 던져주는 새우깡이 그것이다. 이젠 새우깡에 아주 입맛이 길들여져 여객선이 떴다 하면 그 뒤를 졸졸 따라다닌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갈매기들을 '거지 갈매기'라고 부른다.

강화 외포리뿐만 아니다. 관광여객선이 뜨는 포구나 항구에는 어디든 새우깡에 길들여진 거지 갈매기들이 살고 있다. 심지어 서울 여의도 한강 선착장에도 요 몇 년 사이에 유람선을 따라다니는 거지 갈매기들이 생겼다.

옛사람들은 사람 손이 가장 무섭다고 했다. 무엇이든 사람 손을 타면 길들여지고 망가지기 마련이다. 이대로 두면 여의도 갈매기도 관광객들의 호기심과 장난에 희생되어 결국 사냥법을 잃어버리고 제 목숨을 스스로 단축하게 될지 모를 일이다. 생명을 죽여야만 살생이 되는 것은 아니다. 야생을 빼앗는 것도 살생이다.

김재일 두레생태기행 회장

◇김재일씨는 10여년간 국어교사로 재직하다 마흔이 넘어 자연에 귀의해 생태운동을 시작했다. 1994년 ‘두레생태기행’을 설립했다. 승용차 없이 10년간 전국의 자연을 찾아다니며 『생태기행 』(전 3권)을 엮어냈다. 지난해부터 사찰생태 현황을 기록으로 남기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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