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의 '희한한 사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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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14일 전후 70년을 맞아 담화를 발표했다. 식민 지배와 침략을 언급은 했지만 이를 일본이 저지른 사실로 직접 명시하진 않았다. [도쿄 AP=뉴시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직접 사죄나 반성은 없었다. 식민지 지배와 침략의 주체로 일본을 명시하지도 않았다.

 아베 총리는 14일 발표한 전후 70년 담화에서 “우리나라는 지난 전쟁(제2차 세계대전)에서의 행동에 대해 반복적으로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죄를 표명해 왔다”며 “이런 역대 내각의 입장은 앞으로도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고 ‘과거형·3인칭 사죄’를 했다. 1995년 무라야마 도미이치(村山富市) 총리의 전후 50년 담화와 2005년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의 전후 60년 담화를 계승한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자신의 생각은 나타내지 않았다. 무라야마·고이즈미 담화는 “식민지 지배와 침략으로 손해와 고통을 입은 아시아 국가 국민에게 통절한 반성과 사죄의 마음을 표한다”고 명기했다.

 아베 총리는 그러면서 “일본에서는 전후에 태어난 세대가 지금 인구의 8할을 넘겼다. 그 전쟁과 어떠한 관여도 없다”며 “우리들의 아이와 손자, 그 뒤 세대의 아이들에게 사죄를 계속할 숙명을 지워선 안 된다”고 말했다. 식민지 지배와 침략에 대해선 “사변·침략·전쟁 등 어떤 무력의 위협이나 행사도 국제분쟁을 해결하는 수단으로 두 번 다시 사용돼선 안 된다”며 “식민지 지배로부터 영원히 결별해 모든 민족의 자결과 권리가 존중받는 세계가 돼야 한다”고 하는 데 그쳤다.

 담화는 또 조선 합병의 발판이 된 러일전쟁을 미화했다. 아베는 “(일본은) 아시아에서 최초로 입헌정치를 세우고 독립을 지켜냈다”며 “러일전쟁은 식민지 지배하에 있었던 많은 아시아와 아프리카인들에게 용기를 줬다”고 적었다.

 담화는 군 위안부 문제를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전시 여성 피해를 언급했다. 담화는 “전장의 그늘에서는 깊이 명예와 존엄에 상처를 입은 여성들이 있었다는 사실도 잊어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또 “우리는 20세기 전시하에 많은 여성들의 존엄과 명예가 깊은 상처를 입은 과거를 가슴에 계속 새기겠다”며 “21세기야말로 여성의 인권이 손상되지 않는 세기가 되도록 세계를 선도하겠다”고 강조했다. 주한 일본대사관 관계자는 “(이 부분은) 위안부를 적시하지는 않았지만 고노 담화를 계승한다는 뜻을 분명히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부는 아베 담화에 대해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외교부 당국자는 “아베 총리가 발표한 담화 내용을 면밀히 검토 중”이라며 “우리 입장이나 평가는 조만간 밝힐 것”이라고 말했다. 당초 정부는 아베 담화에 무라야마 담화 등 전임 내각의 역사인식을 계승한다는 내용이 명확히 들어갈 경우 성의를 보여 준 것으로 평가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기대에 못 미치자 밤 늦게까지 대책 회의만 했을 뿐 공식 논평을 내놓지 않았다.

도쿄=오영환 특파원, 유지혜 기자 hwas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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