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로 소음·악취 때문에 … 개학 연기한 청주남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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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남중 급식소 뒷산 소나무에 앉아 있는 백로떼. 최근엔 1000여 마리까지 늘었다. [최종권 기자]

11일 오전 충북 청주남중 급식소 앞. 건물을 둘러싼 숲에 500여 마리의 백로떼가 나무 위에 앉아 “끽끽 께~엑” 하며 울어댔다. 급식소 마당엔 페인트로 점을 찍어놓은 듯 곳곳에 흰 배설물이 보였다. 10여m 떨어진 산 기슭 소나무에 앉은 백로 3마리가 “푸더덕” 하고 날자 굵은 깃털이 날렸다. 방충망을 친 급식소 창문엔 잔털이 빼곡히 박혀 있었다. 

 허종범 교무부장은 “먹이 사냥을 나갔다 들어오는 오후 5시쯤이면 백로떼가 1000여 마리까지 늘어난다”며 “소음 때문에 한 여름에도 창문을 꼭 닫고 수업을 해야 할 정도”라고 말했다. 허 교무부장은 이날 오전 급식소를 둘러보다 죽은 백로 2마리를 치웠다. 그는 “백로 배설물과 사체 냄새가 뒤엉켜 악취도 심하다”고 했다.

 청주남중이 학교와 맞닿은 산에 서식하는 수백 마리의 백로떼 처리를 놓고 골머리를 앓고 있다. “나무를 베어서라도 아이들의 학습권을 지켜야 한다”는 학부모들 주장과 “서식지를 보존해야 한다”는 환경단체들 주장이 맞서고 있다. 학교 측은 학부모들의 요구에 따라 개학 시기를 오는 18일에서 24일로 1주일 연기했다.

 청주남중 운영위원회는 11일 “학생들이 백로떼 소음과 악취에 시달리는데도 청주시와 서식지 땅 주인인 청주교대 측에서는 아무런 해결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며 “대책을 마련하지 않으면 등교해도 학교 급식을 거부하거나 아예 학교에 보내지 않을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청주남중 급식소 뒷산에 백로가 서식한 건 2010년 겨울부터다. 이듬해 10마리였던 것이 2012년 100여 마리로 늘었고 최근 3년새 1000여 마리까지 증가했다. 청주교대는 청주남중 정문에서 남서쪽 방향에 인접해 있다.

 백로는 특히 급식소 주변에 집중 서식하고 있다. 김일현(62) 청주남중 운영위원회장은 “하루 3차례 급식 재료를 운반하는 차량이 백로의 깃털이 날리는 공간에서 하차 작업을 한다”며 “조리실 문을 열어 놓으면 백로 각질과 잔털이 들어와 위생 상태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야생조류가 각종 바이러스를 옮길 수도 있는 만큼 소나무를 베어내야 한다”고 했다. 학부모들도 “급식소와 가까운 곳 간벌이라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환경단체는 백로 서식지를 보호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성우 청주충북환경운동연합 정책국장은 “백로는 철새여서 9월 말께면 서식지를 떠난다”며 “백로 새끼가 이제 갓 날개짓을 하는 시기인데 지금 나무를 베어내는 것은 곤란하다”고 말했다. 청주교대 측도 “최근 번식을 한 백로 새끼 때문에 손을 대긴 어렵다”고 했다.

 청주시는 학부모 대표와 환경단체, 청주교대·충북교육청 관계자 등 16명으로 대책위원회를 구성한 뒤 오는 17일 회의를 열고 최종 결론을 내릴 예정이다. 현재 청주교육지원청은 백로 서식지와 인접한 급식소 건물 주변에 천막을 설치해 백로의 배설물 등의 접근을 차단하고 있다.

 최종권 기자 choig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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