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이 책과 주말을!] 나 어렸을 적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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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나 어렸을 적에
글 황인숙, 사진 김성영 외 4명
진디지털닷컴, 129쪽, 1만3000원

나 어렸을 적, 여동생을 많이도 괴롭혔다. 온전히 이름 부른 적도 없는 것 같다. 늘 별명을 불러댔고, 먹을 게 있으면 곧잘 뺏어 먹었고, 때리고 약올리고 놀려댔다.

오누이 모두 서른을 넘긴 지금, 사는 모양 한참 다르고, 각자 살기도 빠듯하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려니 하며 산다. 그런 게 사는 거려니, 스스로 위안한다. 그 사이 하나밖에 없는 피붙이는 일상에서 자꾸만 멀어진다.

새로 나온 사진 에세이를 넘긴다. 어느 중소 도시에서 찍은 것처럼 배경은 누추하다. 그 후미진 공간을 해맑은 얼굴의 아이들이 채운다. 골목을 뛰어노는 사내놈들, 철로에 귀를 대고 기차 소리를 듣는 꼬마들, 활짝 웃으며 줄넘기를 하는 녀석들, 여동생을 울리는 짓궂은 오빠, 자기들끼리 찧고 까부는 아이들이 가득하다.

사진은 인터넷 사진동호회 회원들의 작품이다. 모두 디지털 카메라로 작업한 것이다. 디지털 세상도 결코 차갑지만은 않다는 걸 새삼 깨닫는다. 사진 중간중간을 황인숙 시인이 자신의 어릴 적 얘기를 섞어 가득 메운다. 시인은 "여기 아직 진짜 아이들이 있구나"라며 감탄한다.

나 어렸을 적에, 꼭 이랬다. 책장을 덮고 여동생 전화 번호를 누른다.

손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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