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으로] 엄지가 없었다면 예술도 없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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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맞서는 엄지
나이즐 스파이비 지음
김영준 옮김, 학고재
376쪽, 2만5000원

1879년 에스파냐 북부 알타미라 동굴에서 엄청난 그림이 발견됐다. 아마추어 고고학자 사우투올라와 그의 딸 마리아가 정교한 소 그림을 찾아냈다. 이 고대 동굴벽화는 큰 반향을 일으켰다. 완성도가 너무 뛰어난 나머지 사우투올라가 날조한 것이라는 소문마저 돌았다. 3만 년 전의 사람이 이토록 그림을 잘 그릴 수 있었단 말인가. 사우투올라는 죽을 때까지 명예를 회복하지 못했다.

 선사시대부터 인간은 예술가였다. 무엇이 인간을 예술적으로 만들었을까. 고고학자인 나이즐 스파이비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는 “엄지손가락이 인류를 예술가로 만들었다”고 주장한다. 유독 짧고 굵은 엄지손가락이 다른 손가락과 맞서는 위치에 있었기에 사람들이 손을 정교하게 움직이며 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는 얘기다. 같은 영장류인 침팬지만 해도 손바닥을 오목하게 만들 수 없어 간단한 선밖에 못 그린다고 한다.

 예술은 어떻게 우리 사회를 끌어왔을까. 저자는 고고학·인류학·미술사·심리학·신경과학 등의 최신 이론을 제시하며 이 질문에 대답한다. 수천 년간 5개 대륙에 예술이 남긴 흔적을 추적하며 인류사를 ‘엄지손가락’이란 화두로 풀어낸다. 원제 ‘예술은 어떻게 세상을 만들었나(How Art Made the World)’.

권근영 기자 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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